8일 뉴욕에서 열린 57회 토니상 수상식. 8개 부문의 상을 휩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를 함께 작사 작곡한 두 남자, 마크 셰어먼과 스콧 위트먼이 무대에서 키스를 나눴다. 이들은 25년간 파트너 관계다. 셰어먼씨의 수상 소감은 800만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혼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만인 앞에서 그에 대한 내 사랑이 평생 변치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시상식을 중계한 CBS 방송사에는 항의가 빗발쳤을까? 더군다나 ‘가족 시청 시간대’의 중계였으니…. 그러나 아무 일 없지는 않았지만 별일도 아니었다. 10통의 불만 전화와 68통의 항의성 e메일이 전부였다.
토니상 시상식 전날엔 뉴햄프셔주의 한 교단이 사상 최초로 동성애 신부를 차기 주교로 선출했다. 평신도 투표에서 당선된 진 로빈슨 신부(56)가 미국 내 230만 신도가 있는 감독교단(episcopal diocese)의 주교가 되려면 다음달 전국 총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큰 논란이 벌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법원은 10일 동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현 연방혼인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장 크레티엥 캐나다 총리는 “결혼을 ‘남녀간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사람간의 결합’으로 규정을 바꾸는 연방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동성애자 결혼을 법률로 승인한 세 번째 나라가 될 전망이다.
동성애자 의원인 스벤드 로빈슨 의원은 "2003년 6월 17일은 동성애자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날이 될 것"이라면서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한산해진 토론토는 앞으로 동성애자들이 결혼허가를 받으러 찾아가는 곳으로 각광받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결혼 허용까지는 아니지만 동성애자 커플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이 칠레 의회에 11일 제출됐다. 이런 내용의 법은 이미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의회에서 통과된 바 있다.
이 달 들어 유난히 동성애자에 관한 굵직굵직한 뉴스가 많다. 34년 전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바 ‘스톤월 인’에 대한 경찰 습격에 반대하던 게이 지지자들이 바로 6월에 시민권 운동을 시작한 것도 한 이유다.
미국에선 18일 동성애자들이 헌법상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심리를 시작했다. ‘현 세대의 가장 중요한 게이 권리에 관한 소송’이라는 이 재판은 텍사스의 두 남성의 항소에 따른 것이다. 동성간 성행위를 하다가 체포된 두 남자는 텍사스 주법이 동성애자들만 규제한다며 소송을 냈다.
텍사스 사례의 영향을 받아 뉴욕주는 20일 법조문에서 ‘남색(男色·Sodomy)’ 또는 ‘일탈 성행위’라는 표현을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소도미법’은 남성동성애자의 성행위를 규제하는 법이었다. 이를 두고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ESPA의 전무인 앨런 반 카펠르는 “동성애를 비난해온 뉴욕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세계의 게이 레스비언 등 동성애자들이 29일 뉴욕에서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게 된다. 1969년 6월 사흘간의 ‘스톤월 폭동’을 기념하는 뉴욕의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행사는 22일 시작돼 29일 맨해튼에서의 행진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폭동은 음지에서 살던 게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뉴욕에선 동성간에 춤을 추거나 키스 또는 애정표현을 하다간 체포됐고 여장남자도 체포대상이었다. 지금은 뉴욕타임스에서 동성간의 ‘결합’에 관한 안내 기사를 내보내줄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게이 프라이드’ 행사는 매년 6월 두 번째 일요일부터 마지막 일요일까지 세계 주요도시에서 열려왔다. 뉴욕에선 올해 행진 참여자 25만명, 관중 35만명 등 60만명 규모의 행사가 될 것으로 주최측인 ‘헤리티지 오브 프라이드(HOP)’측은 추정하고 있다. 이날 오후엔 맨해튼 서쪽 끝의 허드슨 강가 54번 부두에서 동성애자 댄스파티가 열린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는 게이를 상징하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의 여섯색깔 무지개로 조명쇼를 펼친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