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명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자리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및 학계 금융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의 유력인사가 대거 참가한다. 노 대통령이 직접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얼마 전만 해도 경제계에서는 내놓고 말은 못해도 이번 회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현 정부 출범 후 노동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정부는 이에 끌려가기만 하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말의 성찬(盛饌)’ 속에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과 ‘전투적 노조’의 득세(得勢)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적지 않았다.
‘잔칫날’이 다가오면서 이런 우려가 다소 줄어드는 것은 다행스럽다. 정부 정책에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달 27일 미국 포브스지(誌) 사주(社主) 겸 편집장 스티브 포브스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2, 3년 안에 ‘노동자에 대한 특혜’를 없앨 뜻을 내비쳤다. 구체적으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파업기간 임금 지급 △해고의 어려움 등 3가지를 ‘특혜 사례’로 꼽았다.
권오규(權五奎)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이 19일 영국 런던에서 밝힌 내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도약하는 것이 한국에 가장 중요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분배정책”이라며 경제정책 기조를 분배에서 성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권 수석비서관의 발언이 눈길을 끄는 것은 현 정부가 출범 석 달의 시행착오와 ‘환상’에서 벗어나 최소한 경제 분야에서 절박하고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기존 지지층인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방향선회를 한다면 우리 경제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충분히 의미 있는 결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규제개혁 등 구체적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거나 다시 혼선을 거듭하면 적잖은 후유증이 따를 것이다. “노사문제가 계속 이렇게 진행되면 기업은 투자 및 고용축소, 공장 해외이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경제5단체의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1999년 타계한 일본 소니의 공동창업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는 “앞으로 소니는 일본 기업이 아니라 세계의 기업”이라고 선언해 일본사회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한국 경제에 ‘도약의 5년’이 될지, ‘재앙의 5년’이 될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경제 및 노동정책과 관련해 지금 이 시점은 미국 인텔사의 앤드루 그로브 회장이 말한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일 수도 있다. 기본전략을 수정하고 발전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기로(岐路)라는 뜻이다. 현 정부 출범 후 겪어온 혼란이 길게 봐서 우리 경제에 ‘보약(補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