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못지않은 경기 불황으로 온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너도 나도 한국을 못 떠나 아우성인 ‘교육 엑소더스’ 현상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1∼5월 외국으로 나간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은 전년도의 13만4742명에 비해 6000명 정도 늘어난 14만718명에 이른다. 무역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해외 유학과 연수로 빠져나간 경비가 46억달러로 무역흑자 108억달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아무리 악전고투하며 돈을 벌어들여도 학생들의 해외유학 경비나 충당할지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올해 초부터 좀 유명하다는 유학원마다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영어 연수생을 모집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단 3주간 언어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의 참가비가 500만원가량인데, 몇백명씩 되는 정원이 금방 꽉 찼다. 대학생들도 졸업 후 취업 보장이 안 되니 언어라도 제대로 구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카드 빚 연체로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지만 한국의 엄마들은 파출부를 해서라도 자녀들을 해외연수에 보낸다.
물론 날로 심화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를 모르고서는 모든 분야에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성장을 원하면 영어를 쓰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틀에 박힌 데이터노동자(data worker) 대신 언어문화적으로 다변화되고 국제감각을 갖춘 지식노동자를 양산하지 않고서는 국민소득 1만달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겠기에 학부모들의 열성을 탓할 수만도 없다. 그런데 그 노력과 출혈만큼 자녀들의 해외연수가 결실을 보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물론 언어교육은 조기에 할수록 효과가 있다. 그러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라도 방학 2∼3개월의 훈련으로는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5세 정도까지는 선천적 언어습득 장치를 갖지만, 이 시기를 지나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인위적으로 해당 외국어의 기본문형과 문법을 익혀 쓰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학생들이 해외연수를 떠나기 전 외국어의 기본문형이나 어휘, 문법적 틀을 충분히 익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기관이나 유학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교육적 효과는 어찌됐건 장사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 짧은 기간에 외국어에 통달할 수는 없다. 미리 외국어 문형을 많이 숙달하고 착실히 준비한 기반 위에서 해외에 나가 실전연습을 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아무 준비 없이 해외에 가서 외국어 몇 마디 얻어 듣고 와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피상적 언어능력은 인간의 2차적 욕구, 즉 정보나 지식을 자유로이 섭취하고 토론을 전개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의와 노력만 기울이면 국내에서도 외국어 실력은 얼마든지 훌륭하게 배양할 수 있다. 실속 있는 세계화는 뒷전에 둔 채 무분별한 해외연수로 엄청난 외화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할 시점이다.
박명석 단국대 교수·영문학·세계 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