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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칼럼]‘최틀러’의 初心

입력 | 2003-06-30 18:27:00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새 대표에 이순신을 가장 존경한다는 ‘국가주의자’ 최병렬씨가 선출된 것은 별 뉴스가 아니다. 그가 5, 6공 출신의 민정계라는 점도 한나라당의 뿌리를 생각하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따져볼 것은 그가 과연 ‘제대로 된 보수’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가 욕을 먹은 것은 수구가 보수 행세를 해온 탓이다. 한나라당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것도 보수라기보다는 수구적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대표가 진정 ‘제대로 된 보수’라면 한나라당에는 ‘축복’일 수 있다.

▼ ‘그때 그 사람들’은 이제 그만 ▼

최 대표는 ‘보수(補修)하는 보수(保守)’를 강조한다. 보수란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이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는 죽음이며, ‘보수의 죽음’을 피하려면 투명성과 공정성, 정의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말대로라면 그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다. 문제는 실천이다. 최 대표의 보수론을 지금의 한나라당에 대입해 확 뜯어고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노릇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제왕적 총재’였으면서도 당을 확 뜯어고치는 데 실패했다. 이 전 총재는 영남권 중진들에게 둘러싸인 채 기득권의 재생산구조에 안주(安住)했다. 시대의 요구인 변화의 흐름을 제때에 알아채지 못했다. 최 대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회창 필패론’을 주장했다. 그가 정말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지리라고 확신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왜 졌는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순(手順)은 명백하다. 첫째는 물갈이다. 주요 당직자 몇 명 바꾸는 정도여서는 안 된다. 정책 마인드는 없이 지역몰표에 힘입어 오로지 권력투쟁만 즐겨온 인물들은 당의 중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대표경선에서 도와준 걸 빌미로 ‘그때 그 사람들’이 계속 대표 주위에서 맴돌아서야 ‘최병렬의 보수’ 또한 수구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당장의 ‘탈(脫)영남당’은 어렵겠지만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나마 보여줘야 한다.

둘째는 최 대표 자신의 말대로 정쟁(政爭)정치에서 정책(政策)정치로 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만날 정부여당의 실패에서 반사이익이나 얻으려 하고 발목잡기나 거듭해서야 수권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정책 중심으로 민생정치, 생활정치를 구체화해야 한다. ‘권력투쟁형 정치’에서 ‘국가경영형 정치’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것으로 노무현 정권의 ‘사회운동형 정치’에 비교우위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최 대표의 정치적 목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지는 날에는 사실상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또 사상 최초의 매머드 경선을 통해 대표가 됐다지만 그의 힘은 전의 총재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시간은 넉넉하지 않고 힘도 약화됐다. 그러나 최 대표에게는 달리 선택할 카드가 없다. 총선 패배가 곧 정치 생명의 끝이니 모든 걸 다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의 힘이다.

▼‘도로 한나라당’ 안 되려면 ▼

최 대표의 힘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시대의 변화와 민심의 흐름이다. 대중은 이제 ‘수구꼴통’에는 신물을 낸다. 부패한 민주화세력이나 편견과 독선에 찬 진보세력도 더는 원치 않는다. 열린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페어플레이를 통해 국익을 위해 경쟁하는 정치를 바란다. 그런데 국민은 지금 노 정권의 분파적 리더십과 미숙한 국정운영에 불안해하고 있다. ‘최병렬 한나라호(號)’의 갈 길은 여기에 있다. 건강한 보수정당으로서 국정의 균형을 잡아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그 길을 알고 있다고 했다. ‘최틀러’란 별명에 걸맞게 ‘맺고 끊는 것’을 분명히 하고 뚝심으로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자신부터 기득권을 훌훌 털어버리고 제대로 된 야당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최 대표는 초심(初心)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 입으로 두 말 안 한다”고 했다지만 정치와 권력의 세계에는 언제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른다. 그가 점차 총선 이후의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한다면 ‘도로 한나라당’이 되고 말 것이다. 무욕(無慾)이 대욕(大慾)이라고 하던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