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8월, 동생 우근과 연습하던 중 우철은 ‘같이 도망치지 않겠냐’고 말하나 우근은 거절한다. 보통학교 5학년에 다니는 영자에게 하카다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일본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다음날 아침, 영자는 남자와 만나기로 한 역으로 가는 도중에 우근과 우연히 만나 작별한다. 남자와 함께 탄 기차의 행선지는 부산이 아니라 만주였다.
신막, 평양을 지나면서 승객들의 고개는 앞으로 옆으로 꺾이기 시작하고, 정주를 지나 신의주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딸랑 딸랑 발차 종이 울려도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5분 후 다음 역 안동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분은 준비해 주십시오. 잃어버린 물건이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안동 지나면 이제 만준데, 벌써 조선하고 만주 국경을 넘은 건가, 국경선이 어디였지? 소녀는 지리 시간에 칠판에 걸려 있던 대동아 공영권 지도를 떠올리면서 창 밖 어둠을 응시했다. 삑-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뽀- 삑, 기적소리와 진동에 소녀의 어깨에 기대 있던 여자가 머리를 들었다가 덜커덩거리는 차체의 율동과 함께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번에는 고리짝 위로 뻗은 자기 팔을 베개 삼았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고리짝에 묶인 우산 손잡이가 이마를 툭툭 치는 데다, 잠에서 깨면 팔이 저려 아플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곤히 자고 있으니 그냥 자게 내버려두자 싶어 소녀는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를 의식 밖으로 몰아냈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아직도 철교를 건너고 있다, 압록강을 건너고 있나 보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이 부근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참외하고 각설탕 메고 팔러 다니면서 여자 고무신을 새끼줄로 발에 묶어 압록강 둑 위를 달렸다는데, 밝았으면 그 강둑을 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뱃놀이로 유명한 대동강도, 양원왕(陽原王)이 살았던 평양성도 캄캄해서 하나도 못 봤어. 3년 후 돌아올 때는 볼 수 있을까? 아 참, 안 되지, 돌아올 때는 시모노세키에서 ‘사츠마마루’타고 부산에서 보통 열차 탈 거니까, 신의주에는 들를 일이 없지. 나 어쩌면, 우리 학교에서 제일 멀리까지 여행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고바야시 선생님이나 데라오 교장 선생님도 나만 못할 거야, ‘대륙’ 타고 조선 반도 끝에서 끝까지 횡단하고, 그 다음 만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걸?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