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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대신 폭탄을 터뜨린 소년들

입력 | 2003-07-02 15:11:00


예루살렘 남서쪽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인 헤브론 주민들은 누추한 한 초등학교 옆 공터를 지날때마다 한때 이곳을 열광과 함성으로 메웠던 소년 축구팀을 떠올린다.

이 아스팔트 공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적 '지하드 축구팀'의 연습장이었다. 10대 중후반으로 이뤄진 이 팀은 헤브론 지역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웠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이제 팀은 사라져 버렸다. 단내를 풍기며 아스팔트 위를 뛰던 '축구돌이'중 상당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시사 주간 뉴스위크 최신호가 전한 이 축구팀의 이야기를 요약 소개한다.

지하드축구팀이 조직된 것은 1998년.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책방을 운영하던 무신이라는 청년이 동네 소년들을 모았다. 가입 조건은 매일 5회씩의 기도와 월요일 금식 준수.

15명의 소년이 모였다. 이들은 1주일에 이틀씩 모여 아침 기도후 축구 연습을 했다. 코치인 무신의 지도력이 탁월했던지 팀은 다른 축구팀들과의 10여차례 경기에서 완승했다.

그러나 2000년 9월 인티파다(무장봉기)가 시작되면서 팀의 운명은 격변했다. 한 팀원이 그해 11월 이스라엘군에 돌을 던지다 총에 맞아 숨졌다. 2개월후 또 한 팀원이 같은 장소에서 숨졌다.

2002년 4월 헤브론을 다시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수천명의 청년들을 구금했다. 상당수 축구팀원들도 구금됐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투옥된 청년들의 명단을 입수, 집중적인 정치 교리 학습을 시켰다. 청년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심과 순교에 대한 굳은 각오를 품고 6개월여만에 풀려났다.

그해 9월 한 팀원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을 시작으로 팀원들은 차례로 자살테러 공격에 나섰다. 팀원은 줄어갔지만 축구 연습은 계속됐다.

올 3월7일 지하드축구팀은 이웃 마을의 라이벌 팀을 대파했다. 그것이 마지막 경기였다. 그날 저녁 10대 소년인 하젬은 아버지에게 그동안 금속세공일을 하며 번돈 500디나르(약 90만원)을 주며 "저는 항상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날 밤 하젬은 3명의 동료들과 유대인 정착촌에 잠입, 2명의 무고한 유대인 부부를 죽인뒤 사살됐다. 이어 5월 17일 한 팀원이 유대인정착촌에서, 18일에는 한 팀원이 허리에 폭탄을 맨채 예루살렘 번화가의 버스에서 자폭했다. 이 테러로 7명의 이스라엘 시민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하마스의 군사조직 지도자이며, 무신의 친척인 압둘라 카와메흐(43)를 살해한뒤 "축구팀이 자살공격조 양성소로 이용됐다"고 밝혔다.

하젬의 아버지는 "그런줄 알았다면 강제로 집에 묶어놨을텐데…"라며 흐느꼈다.

주민들은 이제 지하드축구팀의 '불패 신화'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한다. 건드리기 싫은 아픈 기억인 듯 심지어 그런 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한다. 다만 한 주민은 방문객들에게 한 죽은 팀원이 입었던 청백색 유니폼을 보여줬다. 한 주민은 "언제 축구팀이 부활될지는 모르지만, 텅빈 공터 옆을 지나다보면 힘차게 뛰던 소년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