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녀시절은 항상 외로웠다.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 감정은 집착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그가 즐거워하고 나를 사랑해줄지 늘 고민하던 조숙한 아이였다. 그 대상은 바로 나의 아버지, 고 추송웅(秋松雄·1941∼1985)이었다. 무대 위 아버지는 내게 영웅이었다. 색색의 조명 아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면을 바꾸어가며 객석을 웃기고 울리던 아버지.
▼내 혈관 속의 ‘연극인 추송웅’▼
그런데 그 찬란하던 빛은 아버지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스르르 꺼져버렸다. 무대 위에서 모든 열정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가정’은 아버지에게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부대끼는 공간이었나 보다.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기억들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가슴이 아려오곤 한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을 그토록 서운하게 했다.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오로지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아직까지도 지겹도록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나는 ‘미소’와 ‘파괴’라는 제목의 두 편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 속에 감돌고 있는 것을 느꼈다. 감정을 즉석에서 표출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심리를 절제하면서 표현하는 연기에 눈떴기 때문이다. 비록 수십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저예산 영화를 통해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음을 실감했다. 10년 가까이 연기활동을 하며 ‘연예계’란 곳에 속해 있지만, 이 또한 나에게 ‘맞춤복’은 아닌 듯하다. 돈이나 인기, 명예와 관련된 일보다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순수하게 ‘연기’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 즐겁다. 마치 우물 저 깊은 밑바닥에서 가장 맑은 물의 정수를 맛보는 것과 같다.
요즘 새로운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8월 20일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프루프(Proof)’라는 작품인데 정말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무대다. 이 작품에서 나는 유명 수학자 로버트의 딸 캐서린으로 등장해 천재적인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정신질환을 앓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고뇌하는 역할을 선보이게 된다.
어린시절의 연극 무대는 향기로운 분장 냄새, 무대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포트라이트 불빛 아래서 흩날리던 먼지가루를 연상시킨다. 이 모든 오감의 기억들이 내 영혼의 탱크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연기 욕심이 많은 지금, 오랜만의 무대연기는 정말 가슴 떨리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방송과 영화를 병행하는 게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지만 새로운 나와의 만남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직 표현되지 못한 내 열정의 끝자락까지 다 내보이고 싶다. 내 영원한 질투의 대상인 아버지처럼, 나도 스스로 ‘운명적인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달려갈 생각이다.
▼‘영원한 질투의 대상’이제야 이해▼
내가 진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아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다양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면서 내 연기의 폭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조바심 내지도 않으며 내 삶과 연기가 어우러지는 것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관객들의 마음속에도 추상미라는 배우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한다. 더불어 두 명의 오빠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서울 홍익대 부근의 ‘시네마테크-떼아트르 추’에서 예술영화는 물론 연극, 전시 행사를 계속해 아버지의 깊은 뜻을 잇고 싶다.
■약력
△1973년 생 △홍익대 불문학과 졸업(1994년) △극단 무천의 연극 ‘로리타’로 데뷔(1994년) △연극 ‘바람 분다 문 열어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수상(1996년) △드라마 MBC ‘해바라기’(1998년) KBS ‘노란 손수건’(2003년)에 출연 △영화 ‘퇴마록’(1998년) ‘생활의 발견’(2001년) ‘미소’ ‘파괴’(이상 2003년)에 출연
추상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