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대규모 유전을 독자 개발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이 강력히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의 대(對)테러전쟁을 일본이 적극 지지하면서 어느 때보다 든든해진 동맹관계를 과시해온 두 나라이지만 석유자원 확보라는 실익 앞에서는 서로 낯을 붉히고 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일본 정부에 ‘아자드간 유전’ 개발과 관련해 이란과의 계약 조인식을 연기해주도록 요청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전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도 지난달 30일 “미국은 이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테러지원 등을 고려해 이란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를 반대해 왔다”며 일본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일본의 도움으로 이란이 대규모 유전을 개발하게 되면 여기서 생긴 수입으로 핵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측의 주장. 그러나 이는 표면상 이유일 뿐 양국간 마찰은 결국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정치 역학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98년에 발견된 아자드간 유전에 대해 이란 정부는 이듬해 ‘국내 최대의 유전’이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추정 매장량은 260억배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소비 대국인 일본은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중동국가와 페르시아만 일대에 여러 곳의 유전과 가스전 개발을 추진해 왔다.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은 2000년 이래 아자드간 유전 개발권을 얻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국제석유개발’, ‘석유자원개발’ 등 기업 연합이 총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해 개발하고 원유 대금으로 30억달러를 선불하는 등 파격적 조건을 제시해 개발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제는 조인식만 남겨둔 상태.
이란에 대한 국제적인 포위망 구축을 앞세운 미국측의 조인식 연기 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왜 이제 와서…”라며 당혹해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은 이제까지 유전 개발이 이란의 경제를 활성화시켜 이란의 민주화와 개혁에 결국은 도움이 된다며 미국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무력으로 이라크 문제를 해결한 미국이 중동전략의 초점을 이란 포위에 맞추고 예전에 없이 강경하게 이란 석유 개발을 저지하고 나서며 일이 틀어지게 됐다.
일본은 미국의 요청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데다 6월 말로 아자드간 유전개발 계약 조인시한이 이미 끝나 이란측이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몰라 초조해 하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