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리를 잘 하는 남성의 절제력 있는 배(위). 아랫배가 도톰하면서 적당히 탄력이 있어 섹시해 보이는 여성의 배.
중년의 남녀가 배를 두들기며 ‘인격’이라고 넉살 부리는 것을 가끔 본다. 이는 성품의 격이 아니라, 삶의 격을 의미한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두둑한 배는 부의 징표였으나 요즘은 좀 달라졌다.
배가 대책 없이 나온 사람은 레저나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이거나 자기관리를 못하는 무절제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그만큼 체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폐경 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뱃살이 찌기 십상인 50대 여성들의 경우를 봐도 운동을 즐기고 비만 예방 관리를 하는 부유한 여성들은 아랫배가 약간 나온 30대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인상학적으로는 몸 전체를 나누어 얼굴은 초년, 윗배까지는 중년, 배꼽 밑부터 발까지를 말년으로 본다. 배꼽을 기준으로 윗배와 아랫배로 나뉘며 여성은 자궁까지 배의 일부로 포함된다. 배는 서양에서는 식욕과 성욕이 담긴 욕망의 자리인데, 동양에서는 생명의 자리이다. 그래서 일본의 사무라이는 자결할 때 배를 가른다. 사랑하거나 친숙한 관계는 배를 쓰다듬어 주지만 원한 진 관계는 배를 주먹으로 쳐서 위와 간을 때린다.
배는 장기를 다 담는다. 어린아이의 경우 배가 클수록 좋다는 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장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여유 공간이 있어 좋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미 성장이 다 끝난 어른의 경우 배가 많이 나온다면 이는 필요 이상의 지방이 생겼다는 것이므로 건강상으로나 인상학적으로 좋을 것이 없다. 배가 나오거나 피부가 탄력을 잃어 삼겹살이 되는 것은 지방이 쌓이면서 피부면적이 늘어나는 현상이나 다름없다. 지방간 같은 심각한 질환까지 의심할 수 있는 지경이다.
특히 인상학에서는 윗배가 나온 것을 좋지 않게 본다. 아랫배가 나온 것은 중심을 잡는 단단한 기운으로 보지만 윗배가 나오면 욕심이 많고, 어딘지 불안정하여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곧 운기도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인상학적으로나 건강상으로 홀쭉한 배가 좋은 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걸작 명화에 나오는 누드모델들을 보면 대개 아랫배는 도톰하고 윗배에는 살이 적다.
좋은 배란 뱃살이 적당히 자리잡아 탄력이 있는 상태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뱃살이 빠져 피부가 흐늘흐늘하다면 차라리 배가 나온 것만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짐을 암시한다.
아랫배는 중년 후반부터 말년 운까지를 일러주는 부위다. 남성의 성기는 여성의 그것보다 배에서 가깝게 있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랫배가 좀 더 둥글고 길어, 뱃살이 찌면 엉덩이 쪽으로 지방층이 이동하는 반면 남성은 배불뚝이가 된다. 배의 인상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의 만년이 더 안정적이다. 중년의 남녀가 이 부분을 홀쭉하게 빼버린다면 스스로 자신의 운을 깎고 있는 격이다. 뱃살을 빼면서 피부에 탄력을 주는 방법으로 좋은 것은 윗몸 일으키기와 명상이다. 명상의 호흡법만으로도 허리와 배의 운동이 된다.
옛부족 사회에서는 처녀들이 결혼을 앞두고는 뱃살을 찌웠다. 남녀가 정분이 나면 흔히 ‘배가 맞는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성관계를 가질 때는 배에 적당히 살이 있어 쿠션 역할을 해주어야 좋다. 배가 홀쭉하면 사랑을 나누는 상대로서는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다. 옷을 벗고 만날 때는 배가 도톰해야 더 섹시해 보인다. 그래서 첫날밤을 위해 처녀들이 뱃살을 만들었던 것이다.
어느 패션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타이트스커트를 입을 때는 아랫배가 홀쭉한 것보다는 소위 말하는 ‘똥배’가 약간 있는 게 맵시와 매력이 있다고. 아랫배 살은 이렇듯 매력과 섹시함에다 중년과 말년의 안정까지 가져다준다. 이제 거울에 몸매를 비춰 볼 때는 약간의 뱃살쯤이야 밉다, 싫다며 마구 주먹으로 밀어넣지 말자. 기특하다, 괜찮다며 탁탁 다독여주자.
주선희 인상연구가 joo33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