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엽에 쓰인 공상과학소설 ‘신석두기’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수레’. 주인공 가보옥은 이 수레를 타고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문명 세계’의 이곳 저곳을 여행한다.사진제공 솔
◇하늘을 나는 수레/홍상훈 지음/228쪽 9000원 솔
미국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1997)’에서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범죄자와 얼굴을 맞바꾸는 수술 장면이 나온다. 범죄자가 식물인간이 된 틈을 타 그의 얼굴 가죽을 떼어내 FBI 요원의 얼굴에 씌우는 것.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발한 상상이지만 중국에는 옛날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과 귀신(또는 초능력자)이 얼굴을 맞바꿨다는 점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송(宋)나라 때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한 ‘유명록(幽明錄)’에 등장한다. 동진(東晋)에 살던 가필지(賈弼之)는 얼굴이 잘 생긴 것 빼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글씨는 악필인 데다 학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기억력이 나빠 읽은 책들마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필지는 지방 제후인 사마덕문의 휘하에서 군사 참모를 맡고 있었다. 벼슬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얼굴 덕이었다. 사마덕문은 가필지가 업무를 처리할 때 ‘얼굴 마담’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지역 미남의 대명사였던 그를 군사 참모로 임명했던 것.
하지만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그의 얼굴은 추하게 변해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에게 가필지는 “꿈에서 어떤 사내가 자기와 머리를 맞바꾸자고 간곡히 청해와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내의 청을 들어준 탓에 생시에도 추한 얼굴을 갖게 된 가필지는 처음에는 후회했으나 이내 전고(典故)를 능숙하게 인용하는 그 사내의 재주까지도 함께 갖추게 된 것을 알고 즐거워했다.
이 책은 이처럼 ‘오늘과 맞닿는’ 옛 중국인들의 상상을 가볍게 풀어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상상도에 등장하는 비행선은 중국에도 있었다. ‘박물지(博物志)’에는 은(殷)나라 탕왕 때 기굉국(奇肱國)의 과학자들이 ‘하늘을 나는 수레’를 타고 중국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나무로 만든 인조인간, 미래를 예언하는 외계인, UFO, 컴퓨터 등 중국의 고문헌에 나오는 ‘엉뚱하지만, 있음직한’ 상상의 산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강사 겸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중국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고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썼을 뿐 아니라 출처를 밝히고 원전에 대해 소개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간간이 등장하는 삽화도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책은 장별로 이야기와 그에 따른 해설의 형식으로 구성됐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번역해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끌어 모아’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장편소설(掌篇小說) 못지않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는 탄탄한 문장력도 책의 미덕.
저자의 표현대로 ‘조금은 장난스러운 이런 작업’은 진지한 학자들 사이에서야 뒷말이 있을지 모르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대학도서관의 무거운 철문 안에 갇혀 있는 동양적 전통문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기회가 될 듯하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