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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기진/알쏭달쏭 행정수도

입력 | 2003-07-04 18:02:00


청와대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이 3일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에 대해 ‘3대 배제조건’을 제시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이제 실무 차원으로 옮겨졌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발표였고 ‘수도를 옮긴다’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댐 상류, 백두대간,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 등을 배제하겠다는 구체적인 조건은 얼핏 보면 후보지를 상당히 압축한 느낌도 준다.

하지만 청와대 기획단이 발표한 ‘3대 배제조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된 5곳(충남 천안-아산권, 공주-연기권, 논산권, 대전 서남부권, 충북 오창-오송권) 중 ‘3대 배제조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곳은 1곳도 없기 때문이다.

배제 항목 중의 하나인 대청댐 상류지역(충남 금산군과 충북 보은군 일대)은 애초부터 후보군에 오르지 않았던 곳이다. 따라서 기획단이 왜 후보지도 아닌 곳을 ‘배제대상’으로 언급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굳이 따지자면 오창-오송권이 대청호 경계인 충북 청원군 문의면과 20km가량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것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국가의 백년대계사(百年大計事)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후보지 선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여당은 후보지 결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늦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면 야당은 여당의 이 같은 방침이 대전 충청권 지역민들에게 ‘장밋빛 비전’을 주고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쥐도 새도 모르게’ 수도 이전을 검토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수도 이전 작업은 너무 요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충남북도 관계 직원과 서울의 도시계획전문가 건축사 대학교수 등 200여명의 전문가를 모아 ‘백지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수도 이전을 검토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작성했던 300쪽짜리 15권의 보고서는 1급비밀로 분류되었다가 최근에서야 공개됐다.

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에 신념을 갖고 있고, 국민여론도 행정수도 이전을 승인한다면 입지선정은 국가적 이익을 최우선시해 이뤄져야 한다. ‘여론수렴’이라는 명목으로 행여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근시안적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다면 자칫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도 있다.

이기진 사회1부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