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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기업의 새 생산방식

입력 | 2003-07-08 17:54:00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가정용 게임기 사업 진출을 처음 발표했을 때 정보기술(IT) 업계는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MS라도 본업도 아닌 게임기 사업, 그것도 하드웨어 제조업 도전은 무리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1년여 만에 MS는 자사 로고가 박힌 ‘X박스’ 게임기를 세계시장에 선보였다. 값은 20만원대지만 성능은 최신 펜티엄4 PC에 맞먹는 제품이었다. MS는 설계와 개발업무만 수행하고 생산은 위탁생산 전문업체에 맡기는 방법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물건은 내가 만든다’는 제조업계의 오랜 관행이 바뀌고 있다.

델, 소니, 스리콤 등 세계 주요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위탁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 제조업체들은 단순생산은 더 이상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생산설비는 줄이고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등 핵심역량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경기침체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시장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제조부문 아웃소싱은 제조업체의 생존전략으로 자리잡았다.


▽굴뚝 없는 제조업체=MS는 X박스 게임기의 중앙처리장치(CPU)는 인텔, 그래픽프로세서는 엔비디아로부터 공급받고, 제품 생산은 전자제조전문서비스(EMS) 업체 플렉트로닉스에 맡기고 있다. 이 같은 전략으로 단기간에 닌텐도를 제치고 소니에 이어 게임기 시장의 2위 업체로 도약했다.

세계 최강의 PC업체인 미국의 델컴퓨터는 자체적인 생산은 전혀 없다. 대신 R&D에 힘을 쏟아 지금까지 150여개의 특허를 확보했다. 덕분에 델의 지난해 매출(354억달러)과 순익(21억달러)은 PC업계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각각 14%와 19%씩 늘었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미국 스리콤도 공장이 없다.

미국의 나이키 또한 성장률이 연평균 20% 이상이고 자기자본 수익률이 31%가 넘는 초우량 기업이지만 운동화나 의류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일본 마쓰시타는 기존의 사업부 체제를 바꿔 제조부문을 분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NEC도 미국과 브라질의 생산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일본 내 PC공장까지 처분해 제품 생산의 대부분을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에도 확산=제조부문 아웃소싱은 국내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휠라코리아는 자체 역량은 R&D와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스포츠용품 시장의 메이저 브랜드로 도약했다. 청바지업체 잠뱅이는 아웃소싱할 때 1000벌을 시범 생산한 뒤 반응이 좋을 때만 주문을 한다. 자체 생산시설을 활용한다면 불가능한 방식이다.

SK텔레콤에 휴대전화 단말기를 공급하는 SK텔레텍은 전체 직원의 60% 이상이 R&D 인력이다. 단말기 제조업체이지만 디자인과 기능의 설계하는 일만 한다.

자금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아웃소싱 경영에 더 적극적이다. 제품 전량을 아웃소싱을 통해 받고 있는 개인휴대단말기(PDA) 전문업체 셀빅의 박영훈 사장은 “중소 벤처기업이 급변하는 시장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는 생산 아웃소싱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패러다임이 바뀐다=제조부문 아웃소싱의 확산으로 강력한 신생기업이 출현하고 위탁생산 전문업체가 부상하면서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신생 벤처기업이 거대한 생산설비와 배송, 애프터서비스 체계를 갖춘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는 것.

전자업계의 생산 아웃소싱 수요 증가는 전자제조서비스(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 전문 거대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제품 개발은 하지 않고 오로지 주문대로 생산만 하는 공장 기업. 세계적인 EMS 업체인 솔렉트론과 플렉트로닉스는 미국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들었다. 솔렉트론은 10년 전만 해도 공장 하나만 지닌 하청업체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에 60여개의 생산설비를 갖춘 거대 기업으로 도약했다.

정보콘텐츠 전문업체 넥스텔리전스의 조성우 연구부장은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생산부문 아웃소싱은 21세기 제조업의 한 흐름”이라며 “한국 기업들도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대기업은 EMS 업체 활용에 눈을 돌리고 중소기업은 기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생산을 EMS 체제로 전환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주요 해외 기업 제조 부문 아웃소싱 사례국가아웃소싱 내용미국-IBM, 델컴퓨터 등 PC업계는 생산 분리와 제조 아웃소싱으로 급성장
-노텔, NCR 등은 휴대전화 단말기 생산 아웃소싱
-시스코시스템스, 선마이크로 시스템, HP 등은 생산 아웃소싱을 통해 벤처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도약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 X박스를 비롯해 마우스와 키보드 등 PC 주변기기를 아웃소싱을 통해 생산일본-소니와 마쓰시타는 사업부 소속 생산공장을 전사차원의 공장으로 통폐합·재편
-NEC, 도시바는 해외공장 매각, 국내 공장으로 생산 집약화유럽-노키아 에릭슨 알카텔 등은 자체 공장 매각, 제조 부문 아웃소싱으로 조달
-에릭슨은 소니와 휴대전화기 사업 제휴자료:삼성경제연구소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