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DJ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햇볕’은 이미 그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그것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5억달러의 뒷거래가 개입되었음이 드러나면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북한의 핵 개발과 핵 보유 시인으로 정책적 효력마저 잃어버렸다.
햇볕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선(先)교류협력, 후(後)긴장완화의 기능주의적 접근에 있었다. ‘더 많은 대화와 접촉’이 김정일 정권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믿음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돌아온 DJ가 상기된 표정으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고 말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한반도 시계 다시 10년전으로 ▼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대응은 복선적이었다. 남북대화 및 경제협력에 응해 실리를 취하면서도 핵, 미사일 프로젝트는 집요하게 추진했다. 결국 2002년 4월 임동원 당시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는 “2003년의 안보위기를 예방하러 간다”며 평양으로 떠났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 개발 시인으로 한반도의 시계는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이 모든 것은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던 햇볕정책이 파산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햇볕론자들은 이 문제의 해결보다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우선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를 넘어선 ‘평화 만들기(peace making)’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결과는 ‘평화 지키기’도 제대로 되지 못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지난 대북 송금 특검의 초점은 비밀 송금된 5억달러가 정상회담용인가, 아니면 현대의 대북사업 비용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5억달러가 핵 개발에 전용됐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필수적인 원심분리기 구입에 쓰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필자는 이를 확인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 경제를 오랜 기간 관찰해 오면서 그 돈의 주요 부분이 굶주린 북한동포들을 위한 민생경제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비용’, ‘통일비용’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햇볕정책이 아니었더라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은 혹세무민(惑世誣民)에 가까운 말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햇볕’을 넘어서야 한다. 그 기본방향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햇볕’보다 더 튼튼한 안보, ‘햇볕’보다 더 공고한 평화, ‘햇볕’보다 더 투명하고 원칙 있는 교류협력, ‘햇볕’보다 더 할 말은 하는 남북대화, ‘햇볕’보다 더 북한동포를 생각하는 경제지원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한나라당의 실패는 바로 이러한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제시하지 못한 무능력에 있다. 오죽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 같은 사람에게 “만날 발목만 붙잡지 말고 ‘달빛정책’이라도 내놓아 보라”는 핀잔을 들었겠는가.
▼전쟁위험 제거 최우선과제 ▼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를 안고 출범했다. 따라서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난센스다.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교류협력 활성화’에서 ‘핵 문제 해결을 통한 전쟁위험 제거’로 달라졌는데도 두 정책이 기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참모들이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들이 현재의 평화번영정책을 만들다 보니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대통령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평화번영정책’은 아직까지 ‘햇볕정책’의 부정적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햇볕’은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햇볕’보다 더 좋은 평화, 더 훌륭한 화해협력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한 ‘평화번영’은 성공하기 힘들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