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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전직 지원 컨설팅' 확산

입력 | 2003-07-10 17:44:00


대우자동차 엔진 품질관리부에 근무하던 김모씨(46). 2001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처음엔 ‘왜 하필 내가? 왜 우리 회사가?’ 하는 분노와 상실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가 지원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전직) 컨설팅업체에서 전화가 걸려왔지만 “다신 전화하지 말라”며 끊어버리기도 했다.

퇴직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김씨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컨설팅업체의 상담에 응했다. 컨설턴트는 김씨의 이력을 검토하고 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기업들을 골라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도록 독려했다.

김씨는 기계제조 중견기업인 K산업에 재입사했다. 봉급은 예전보다 조금 줄었지만 김씨는 ‘제2의 직장’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들어가면서 기업의 지원으로 퇴직자가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창업을 하도록 도와주는 아웃플레이스먼트가 확산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명예퇴직자나 정년퇴임자를 위한 전직지원센터를 상설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중견 기업과 공기업들에도 이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실시하는 기업에 대해 소요자금의 절반(대기업은 3분의 1·보통 1인당 100만원 안팎)을 지원하고 있다.

▽‘퇴직자는 회사의 잠재 고객’=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직원 47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올해 초 서울 서초구에 전직지원센터를 열고 전문 업체와 계약해 과장급 이상 간부 퇴직자들을 컨설팅했다. 처음엔 부행장이 퇴직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러 단상에 올라갔지만 분위기가 워낙 썰렁해 금방 내려왔다.

그러나 3개월간의 전직 지원 컨설팅을 끝낸 뒤 퇴직자들은 은행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떠났다.

국민은행 연수운영과 권오경(權五暻) 과장은 “한 회사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들은 퇴직에 직면해 심한 배신과 사회적 격리를 느낀다”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떠나는 회사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2001년부터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예정자를 대상으로 ‘그린 라이프 디자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사내외 전문 컨설턴트와 행정지원 요원이 상주하면서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퇴직 예정자는 1년간 특별휴직을 하면서 회사가 마련한 컨설팅(6개월)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은 퇴직으로 인한 급격한 환경변화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프리 라이프 디자인 세미나’, 개인별 성격과 행동양식, 핵심역량을 진단하는 ‘파워 스타트 워크숍’, 부부가 함께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고 삶을 설계하는 부부동반 활동, 개인별 재정 설계와 실력 배양, 진로 개척 등을 하는 ‘라이프 디자인 워크숍’ 등으로 진행된다.

삼성전자는 서울 중구 태평로 본관 지하 1층에 CDC(Career Development Center)를 마련하고 퇴직 임직원들의 재취업과 직원들의 경력관리를 하고 있다. 2001년 말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800여명이 센터를 거쳐 갔다.

▽관련 산업도 확대=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직업 스타일이 달라지면서 해외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 컨설팅업체들도 잇따라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1998년 미국 DBM(Drake Beam Morin)의 한국지사 DBM코리아가 문을 연 이후 리헥트해리슨(LHH), KR&C 같은 전문 업체들이 생겼다. 스카우트, 제니엘 등 인터넷 채용전문업체와 인재파견업체들도 이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업체인 라이트 매니지먼트 컨설턴츠는 9일 한국에 지사를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198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세계 36개국에 300여개 지사를 갖고 있다.

한국 진출을 계기로 8일 방한한 리처드 피놀라 회장은 “한국은 노동시장이나 개인의 직업인생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돼 아웃플레이스먼트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 사람이 일생동안 평균 6∼7번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조사됐고, 불황에도 인력감축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이미 상시 구조조정과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는 활성화되었다는 것. 라이트사는 일본 진출 초기에는 주로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으나 지금은 매출의 80%를 일본업체에서 올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피놀라 회장은 “공장의 해외이전, 기업 인수합병, 감원 등으로 고용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기업간 경쟁이 너무 치열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평생직장은 찾기 어렵다”면서 “직장인들은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주요 아웃플레이스먼트 사례회사인원/지역기간특징삼성생명440명/전국2001.9∼2002.3-전국(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적으로 센터 운영
-상시(매년 전체인력의 10%) 구조조정에 따른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교보생명600명/전국2002.10∼2003.1-전국에 센터 운영국민은행 253명/전국2003.1∼2003.5-제1금융권 최초로 전국적인 센터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운영.
-은행합병에 따른 인력 중복으로 상시 구조조정 시행포스코34명+기타2001.11∼현재-국내 최초 본격적인 정년퇴직자 은퇴 프로그램 운영
삼성코닝82명/수원, 구미2001.8∼2003.1-생산직 사원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
-창업 재취업 공동창업 등 다양한 경력전환한국전력120명/전국2002.10∼현재-공기업으론 처음으로 본격적인 정년퇴직자 프로그램대우자동차1200명/인천2001.2∼2002.2-단일지역 국내 최대 규모의 다운사이징
-한국 최초의 노사정 협력에 의한 프로그램자료:DBM코리아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