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 박동진(忍堂 朴東鎭) 명창의 영결식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별맞이터. 국악인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인 만큼 600여명의 국악인이 참석해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이 자리에서 신영희 명창은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의 추모시를 창으로 불러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신 명창은 슬픔에 겨워 마디마디 끊으면서도 절규하듯 창을 이어갔다.
“느릿한 북장단 구성진 진양조로 심금을 울리더니, 산하를 울리더니 세월따라 홀연히 밀물따라 황망히 피안으로 떠나가신 겨레의 명창….”
추모시 낭독이나 추모 연주보다 ‘소리’가 고인의 영결식에 어울린다고 여겨진 것은 아마도 이에 앞서 흘러나온 고인의 생전 육성 때문일 것이었다. 고인은 미처 유언을 남기지도 못하고 떠났다. 그러나 영결식에서 울려 퍼진 그의 육성은 마치 유언처럼 참석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발가벗고 종로 네거리에 나가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요. 왜? 나는 우리 것을 해왔으니까. 조상들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내 운명입니다…나는 죽을 때까지 소리를 하고 싶어요.”
판소리보다 오페라가 대접받는 세태, 우리 것과 남의 것도 구분 못하는 세상에 대고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따끔한 말을 남겼던 고인의 유언으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어 보였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