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북 송금사건의 추가 수사가 배제된 제2 특검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려는 것은 야당의 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야당이 정부 여당에 동조함으로써 투명해야 할 남북문제에 관련된 중대한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을 포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기간 연장 거부로 활동을 중단한 송두환 특검팀이 내린 수사결론은 미진하기 짝이 없다. 특검팀은 대북 송금이 남북정상회담과 연관성이 있다고 공식발표를 해 놓고도 나중에는 그 돈이 정상회담의 ‘대가’는 아니라고 흐림으로써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이것은 이 사건의 특검 목적인 진상규명이 덜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수사기록에서 밝혀진 사실은 1차 특검의 수사가 불충분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초 김대중 정권은 북측에 정상회담에 응하면 쌀 비료 등 인도적 지원 이외에 20억∼30억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건설 지원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현금 5억달러를 요구해 정부측이 현금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이에 당시 현대측과 논의 중이던 대북사업의 대가조로 10억달러를 요구했고, 현대측은 2억∼3억달러 이상은 어렵다고 버티다가 북측이 마지막 접촉에서 그 액수를 5억달러(이 중 5000만달러는 평양체육관 건설 등에 필요한 현물)로 하고 이를 거부하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나와 결국 우리측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특검은 공식발표에서 이 돈에 대해 “비밀 송금되고 송금 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했던 관계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규정했다.
문제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현금은 곤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상회담 개최를 서둔 나머지 이를 수용한 점이다. 현금은 북측이 무기 구입과 핵 및 미사일 개발비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초 생각대로 김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선물로 6·15공동선언을 통해 20억∼3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을 발표했더라면, 북한의 경제재건에도 도움이 되고 개혁개방도 촉진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찰 4억5000만달러를 북측에 송금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 점에서 대북 송금 문제는 단순한 송금절차상의 하자 문제만이 아니다. 북한은 그 무렵 상당량의 재래식 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수입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전투기와 미사일 부품을 도입했고, 러시아에서는 레이더 시스템을 들여왔다. 그리고 파키스탄에서는 7000만달러를 주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북측에 송금된 4억5000만달러는 당시 북한의 외환사정으로는 엄청난 돈이었다. 통일부에 의하면 이 돈이 비밀 송금된 2000년의 북한 총수출은 5억5000만달러, 수입은 14억1000만달러로 약 8억6000만달러의 무역적자 상태였다. 북한은 소련권이 붕괴되기 전에는 수출이 근 20억달러에 이른 때가 있었으나 90년대 이래 수출이 격감해 98년에는 5억5000만달러, 99년에는 5억1000만달러라는 최악의 상태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4억5000만달러라는 엄청난 현찰을 북측에 제공한 것은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안이다.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과 무력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불가사의한 결정을 한 데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
김 전 대통령 관련 부분도 제대로 밝혀야 할 의혹이다. 최근 밝혀진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5월 초 이를 사전보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당연히 규명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추가적인 대북 송금 수사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한 이상 현실적인 법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여야관계를 앞세워 역사적 진실의 은폐에 가담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