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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캡틴 쿠스토'…바닷속 신비 전한 해양탐험가

입력 | 2003-07-11 17:26:00

길다란 눈이 온전히 보존된 삼엽충 ‘아사푸스 코발레브스키’ 화석. 이 정도로 원형을 유지한 화석은 모든 화석 애호가가 탐을 낼만한 ‘꿈의 수집품’에 속한다.사진제공 시그마프레스


◇캡틴 쿠스토/이브 파칼렛 지음 심현정 옮김/478쪽 1만3000원 우물이있는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이 숨지다.’

프랑스 AFP통신은 1997년 6월 25일 이런 제목과 함께 자크 이브 쿠스토의 사망소식을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그는 ‘최초의 해양탐험가’ ‘환경의 교황’ 등 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닌 유명 인사였다.

프랑스의 일요판 신문 ‘주르날 드 디망슈’가 매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설문조사에서 그는 늘 1, 2위를 다퉜고,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뛰어난 탐험가를 뽑는 영국 BBC 방송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남극을 정복한 아문센을 제치고 7위에 올랐다.

쿠스토는 인류에게 바닷속 세계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선구자였다.

그는 1943년 자급(自給)식 스킨스쿠버 장비를 발명했다. 그가 ‘아쿠아 렁(Aqua Lung)’이라고 이름붙인 이 장비의 탄생은 현대식 스쿠버 다이빙을 가능하게 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지상과 연결된 보조기구 없이 마음껏 바닷속을 헤엄칠 수 있었고, 수심 100m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바다 탐험이 본격화된 것은 영국 정치인의 후원으로 1950년 칼립소호를 소유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칼립소호를 이끌고 세계 각지의 바다를 탐험했다. 첫 무대는 홍해였다. 그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바다 생물을 발견해냈다. 마르세유 근처 바다에선 기원전 3세기말에 침몰한 배를 발굴했다. 그는 지중해 홍해 인도양 등 6개월간 1만5000마일 이상의 탐험에서 찍은 필름으로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세계’를 제작했다.

1956년 파리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광대한 바닷속에 처음 보는 수중 생물이 수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했다.

오늘날 바닷속 세계를 다룬 수많은 필름들은 모두 쿠스토의 작품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후에도 그는 14편의 영화와 114편의 TV시리즈를 찍었다.

그는 수많은 곳을 탐험하는 도중 전 세계 바다가 얼마나 오염되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열렬한 환경보호론자가 됐다. 그는 1959년 국가원자력기구가 지중해 코르시카 섬 주변의 2600m 해구에 방사성 폐기물을 버리려던 계획을 온갖 노력을 기울여 포기하게 만들었다. 남극 개발을 꾀하는 웰링턴협약에 대해서도 반대서명운동을 벌여 200만명의 서명을 받은 끝에 협약을 무산시켰다.

사후 출간된 저서 ‘인간 낙지 난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탐욕에 눈먼 현대인들은 수세기 뒤 후손들이 부담해야 할 수표를 남발하고 있다.”

1996년 86세의 나이로 황허 상류의 자링 호수 등 황허 일대를 탐험한 것이 50여년에 걸친 물속 탐험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이듬해 바이칼호수의 탐험을 꿈꾸다가 눈을 감았다.

저자는 1972년부터 25년 동안 쿠스토와 함께 일했던 탐사단의 공식 작가. 쿠스토의 일생을 연대기 순으로 담담하게 소개했다. 오랜 친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방적인 찬사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쿠스토 역시 명예와 아첨에 쉽게 빠져들거나 인내심이 부족해 주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는 등 개인적 결함까지 여과없이 서술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