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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금연의무화 겉돈다 "금연 제대로 하면 손님 안와"

입력 | 2003-07-11 18:37:00


《1일부터 금연구역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새 국민건강증진법이 발효됐지만 이 법이 정착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조짐이다. 관공서나 병원, 학교, 사무용 건물 등 공공기관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지만 PC방, 오락실, 만화방 등 영세사업장에서는 법규정에 따라 시설을 완비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9일 서울 성동보건소 보건지도과 이금순 간호사(41·여)가 단속하는 현장에 기자가 따라 나섰다.

이날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K PC방. 50여석 규모의 이 PC방은 ‘너구리를 잡듯’ 온통 담배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들은 저마다 재떨이를 PC 앞에 놓은 채 스타크래프트, 피파21 등의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새 국민건강증진법은 PC방, 만화방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반드시 업소의 절반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금연표지판 칸막이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업소가 설치해 놓은 것은 가게 유리문에 붙여놓은 금연스티커 한 장이 고작이다.

인근 G 만화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단속반이 찾아가자 이 업소 주인 조모씨(37)는 “만화방도 금연구역 대상이냐”라며 단속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금연구역 지정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고 난 조씨는 “어차피 담배 연기가 에어컨 때문에 퍼지는데 이런 것은 너무 형식적인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작 금연시설을 갖춘 업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수동의 S PC방의 경우 전체 40대가 넘는 PC 중 금연구역에 위치한 PC는 6대에 불과했다. 그나마 금연구역 내 공간은 탁자와 장식품 등으로 메워놓고 있었다. 금연구역의 매출은 아예 포기해버린 셈. 대신 흡연구역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업소 주인들은 “금연구역에는 아예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업주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씨는 지난 며칠 동안 관내 120여개 PC방을 점검했고 그중 위반 정도가 심각한 25군데를 이날 다시 방문했다. 성동보건소는 PC방의 금연법 유예 기간이 풀리는 15일부터 이들 ‘불량’ 업소를 상대로 우선적으로 단속에 나서는 한편, 부분적으로 시설이 미비한 나머지 업소들도 점검할 예정이다.

관공서나 병원, 학교, 음식점 등은 대체로 ‘금연법’을 잘 따르고 있는 편. 연건평 600평 이상으로서 금연 빌딩으로 지정된 각종 건물들은 대부분 외부에 흡연구역을 만들었다.

그러나 법에 따라 시설을 갖춘 업소도 불만은 있다.

얼마 전 화장실의 재떨이를 모두 없앤 성수동 S 빌딩 관리실 박모 과장(46)은 “재떨이를 없앴더니 꽁초가 바닥이나 변기로 간다. 어차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막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보건소측은 앞으로 경찰과의 합동 단속도 할 예정이지만 지속적인 단속은 기대하기 힘들다. 보건소마다 1∼2명의 직원이 관내 1000여개에 이르는 공공이용시설을 일일이 점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6시쯤 단속 일과를 마친 이씨는 “의무적으로 금연시설로 지정된 곳 외에 자발적으로 금연시설을 신청한 곳은 매우 드물다”며 “제도의 정착을 위해선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