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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窓]과학은 목숨건 외줄타기

입력 | 2003-07-13 17:16:00


“신이여. 우리를 갈라놓으소서.”

이란의 라단 비자니, 랄레흐 비자니 자매의 이 소원을 알라신은 반만 들어줬다. 신은 그들의 머리를 분리해주는 대신 생명을 앗아갔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세계 의학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성인 샴쌍둥이의 머리 분리 수술 얘기다.

수술이 실패하자 당장 논란이 일었다. 수술을 지휘한 측은 “분리 수술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측은 “생명에 위험이 없던 자매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이런 정서는 그대로 옮겨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현대의학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과학을 맹신한 현대인에 대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까지 평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껏 잘 살아왔는데 왜 이제 와서 머리를 분리하려 했느냐”며 자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96년 독일 의사들은 비자니 자매가 공유하고 있는 뇌혈관을 분리하는 것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이번 수술에 대한 독일 의사들의 결정을 옳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자는 이런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해서 과학자들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자칫 새로운 의학 및 과학기술에 대한 도전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과학은 결과만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출신 외과의사 아톨 가완디는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학을 ‘목숨을 건 외줄타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가완디의 이 말에는 과학의 진리가 숨어 있다. 목숨을 건 모험이 과학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는 얘기다. 외줄타기가 없으면 과학은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자유가 피를 먹고 자라는 것처럼 과학 역시 앞선 희생과 과학자의 열의가 밑거름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비자니 자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며 이번 수술 역시 ‘실패’가 아니다.

이번 수술을 시도한 의료진에게는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자매가 하늘에서라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환하게 웃기를 기원한다.

김상훈 사회2부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