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 뮤지컬을 표방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어른들이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뭉클한 감동에 빠져들게 한다. 사진제공 극단 가람인
뮤지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브라질 작가 J M 바스콘셀로스의 유명한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마흔여덟살 제제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섯 살의 제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라임오렌지나무와 새 요정, 맘 좋은 아저씨 뽀르뚜가 등 마음의 위안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뽀르뚜가를 잃고 라임오렌지나무의 어린 정령과 새 요정을 떠나보내며 제제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그림동화 같은 무대미술, 제제의 꿈과 갈등을 표현한 요정들, 화사하게 흩날리는 꽃비…. 극본(김태수)과 연출(김정숙), 그리고 무대(김소영), 음악(최완희), 의상(김은영)에 이르기까지 연출진은 바르콘셀로스가 글로 표현한 것들을 효과적으로 시각과 음향으로 표현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녹음한 음악 역시 관객들을 감동으로 빠져들게 해준다.
관객들은 제제와 함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가족과 타자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키덜트(Kidult) 뮤지컬을 시도했다”는 기획자의 의도는 조금 빗나간 셈이다. 이 작품은 새 요정과 작은 악마가 등장하는 어린이뮤지컬로 출발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아련하게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어른들의 뮤지컬로 바뀌어간다. 아이들에겐 다소 복잡한 줄거리와 이해하기 어려운 교훈적 대사들이 부담스럽고, 어른들은 단체관람에나 적당할 듯한 황량한 공연장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키덜트는 이제 아이(Kid)와 어른(Adult)을 포괄하는 용어가 아니라 ‘어린이의 감성과 취향을 추구하는 어른’을 가리키는 문화 용어로 사용된다. 잠시나마 고달픈 현실을 잊고 싶은 어른들이 아늑한 공연장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감동을 느껴보고 싶은 작품이다.
16일 오후 4시반 7시반, 17∼29일 매일 오후 3시 7시반. 서울교육문화회관. 2만5000∼5만원. 1588-789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