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시장에서도 한국영화가 뜨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영화 DVD는 엄청난 극장 흥행 성적과 달리 DVD 애호가들이 잘 찾지 않았다. 그러나 올 들어 다양한 서플먼트(부록)와 화려한 패키지로 단장하면서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앞으로는 어지간한 할리우드 대작과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 만큼 한국영화는 극장뿐 아니라 DVD시장에서도 ‘효자 상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류(韓流) 열풍이 뜨거운 중화권에서 주문이 쏟아질 만큼 한국영화 DVD의 인기는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그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풍성한 볼거리로 ‘재무장’=극장에서 만나는 영화는 그저 영화뿐이다. DVD의 경우는 영화뿐 아니라 다른 볼거리가 포인트. 초기 한국영화들의 DVD에는 달랑 본편만 수록됐지만 요즘은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12일 발매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DVD에는 감독과 주연배우 신하균의 음성해설, 배우 제작진 인터뷰와 조연을 맡은 삽살개 모습, 잔혹한 묘사가 강해 극장에서 개봉된 완성본에서 뺐다는 삭제장면 모음에 이르기까지 푸짐한 부록이 수록됐다.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볼 수 있는 ‘이스터 에그 (Easter Egg·프로그래머가 사용자들의 재미를 위해 숨겨놓은 내용)’와 장 감독이 ‘시체놀이’를 한다는 그의 방 풍경도 들어 있다.
‘클래식’은 곽재용 감독이 DVD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NG장면에서 음성해설을 할 만큼 정성을 들였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DVD에는 김경형 감독과 권상우 김하늘이 참여한 음성해설, NG장면 모음과 포스터 촬영영상, 스토리보드 등이 담겼다. 또 ‘친구’의 DVD에서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직접 해설한다. 부산에 내려가 촬영지를 돌아다니며 제작 당시를 회고하는 영상도 수록됐다.
‘파이란’ ‘친구’ ‘고양이를 부탁해’ 등 한국영화 DVD를 전문적으로 기획 제작해온 ㈜진인사필름의 박범수PD는 “한국영화도 최근 사전 제작단계부터 DVD를 미리 기획하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말한다. 박PD는 16일 개봉된 영화 ‘똥개’의 DVD 제작을 맡아 오디션 과정 등 사전 기획단계부터 함께 현장을 다니며 DVD 자료를 수집했다.
전국에서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도 꽤 유명한 DVD 마니아. ‘질투는 나의 힘’ DVD에 박찬옥 감독과 함께 해설에 참여할 만큼 열심인 그 역시 9월초 출시될 ‘살인의 추억’ DVD의 해설과 극장에서 보여주지 못한 영상을 담느라 요즘 분주하다.
▽화려한 패키지로 ‘소장 가치’ 극대화=지난달 출시된 ‘클래식’의 한정판 DVD는 예약으로만 완전 품절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영화에 나오는 나무 케이스에 테마음악으로 쓰인 ‘자전거 탄 풍경’ 1집 앨범까지 담은 한정판이 나오자마자 DVD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서로 사려고 하는 진풍경까지 빚어졌다. ‘선생 김봉두’의 한정판 DVD에는 향수어린 시골책상 디자인의 커다란 패키지에 왕 연필, 수필집 ‘산골마을 작은학교’가 들어 있으며 ‘집으로…’의 한정판 DVD에는 이정향 감독이 촬영지를 다시 찾아가 찍은 사진, 회고담을 담은 책 ‘후유증’이 함께 실렸다. ‘지구를 지켜라’의 한정판 DVD에는 외계인 퇴치무기인 물파스와 때밀이수건이 제공됐다. ‘품행제로’ ‘마들렌’ ‘연애소설’ ‘광복절 특사’ DVD들처럼 초기 발매판에 OST 음반을 함께 제공하는 것도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
저절로 손이 가는 독특한 케이스로 ‘포장’부터 눈길을 끄는 경우도 많다. ‘친구’의 DVD는 차가운 느낌의 철제 케이스로, 15일 출시된 ‘취화선’의 DVD는 고전의 품격이 있는 목재 케이스로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영화 3편과 제작과정 이야기를 수록한 디지팩(플라스틱) 케이스 형태의 DVD콜렉션도 최근 발매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의 친필 사인이 실린 DVD를 모으는 마니아들도 크게 늘고 있다.
때론 옛 한국영화도 DVD로 복원된다. 김청기 감독의 ‘로봇 태권브이’가 그런 사례에 속한다. 사라진 필름까지 찾아서 때묻은 필름을 한컷 한컷 닦아내 복원했으며 감독 인터뷰까지 수록한 DVD를 발매해 화제를 모았다.
또 군사정권 말기인 1986년, 검열에 의해 13군데나 잘려나간 김수용 감독의 ‘중광의 허튼소리’도 18년 만에 완전복원판 DVD로 이달 말 선보일 예정이다. 노(老)감독의 애틋한 감회와 당시 상황에 대한 음성해설이 담겨 있다.
김종래 파파DVD 대표jongrae@papadv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