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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백남선/高價의약품 건보 적용 앞당겨야

입력 | 2003-07-20 18:42:00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기부담 상한제’는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취한 의료체계 변화의 첫 시도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감기와 같은 경미한 질환에만 보험이 적용되고 암과 같이 환자의 부담이 큰 질환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조가 되지 않는 한국의 기형적 수가체계를 균형 있게 전환한다는 것이 기본 내용이다.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자비 부담에 제한가를 둔다는 것으로 고소득자는 상한액을 300만원, 저소득자는 200만원으로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내년부터 실시할 계획이라니, 그동안 고가의 치료비 부담으로 경제적인 고통을 받아왔던 많은 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서 환자 개개인에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의사의 의약품 선택 폭을 넓혀 주는 의료보험 체계 변화도 시급하다.

필자는 지난 30여년 동안 암 환자들을 치료해 오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병마와 싸우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를 했다면 90% 이상 완치가 가능했다는 점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잠재 환자들이 건강에 대한 과신 등으로 조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방암의 경우 진행시기가 오래될수록 유방 전체를 절제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신체적 상처뿐 아니라 유방이라는 여성의 상징성을 상실하는 2차적 고통이 뒤따른다.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부부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이혼에까지 이르는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최근 암의 진전 정도에 따라 종양이 발생한 유방의 일부만을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한 뒤 항호르몬요법 등과 같은 보조요법을 병행해 환자의 치료 및 생존율을 극대화하는 길을 찾고 있다. 호르몬 보조요법은 그 효과뿐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이렇듯 환자의 1, 2차적 피해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환자 중심의 치료방식이 새롭게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진보된 의료기술의 혜택이 모든 환자에게 돌아가려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이고 균형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항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기술과 신약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직까지 보험재정 부족으로 효과가 입증된 우수한 치료법조차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암과 같이 치명적인 병마와 싸워야 하는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질병 치료에 앞서 환자 스스로가 삶을 지켜낼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환자들에게 더 이상 암은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상식적인 보험급여체계를 갖추겠다는 관계 당국의 전환적인 자세는 질 높은 의료 환경을 구축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이러한 선진 의료 환경으로 진보하는 첫걸음이 고가의 의약품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이라는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 행복 증진의 길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백남선 원자력병원 외과과장·전 유방암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