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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용병 축구선수들의 귀화 사연

입력 | 2003-07-23 17:44:00


최근 프로축구 성남 일화 소속인 러시아출신 라티노프 데니스(26)의 귀화를 계기로 외국인 선수 귀화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귀화가 가장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종목은 프로축구. 이미 신의손(안양 LG)과 데니스 등 두 명이 귀화를 마쳤고 귀화를 추진 중이거나 추진했던 선수도 서너 명에 이른다.

탁구에선 올 5월 중국 청소년대표 출신 주페이준(23·포스데이타)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또 미국의 여자 아이스댄싱 선수가 한국 귀화를 추진하는 등 앞으로도 외국인 선수의 귀화가 꼬리를 물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축구계 귀화 1호인 신의손. 그는 '구리 신씨'의 1대조로 안양의 수문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축구를 중심으로 귀화를 둘러싼 외국인 선수들의 사연을 사례별로 정리해 본다.

○“한국이 좋아요”

데니스는 한국이 좋아 귀화한 대표적인 예. 러시아 청소년대표 출신인 그가 한국에 온 것은 18세 때인 96년. 당시 수원 삼성에 입단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데니스에게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했고 한국에서의 활약을 기반으로 2000시드니올림픽과 2002월드컵 때 러시아대표로 발탁됐다.

한국선수들과 정도 들 만큼 들었다. 수원 삼성 출신으로 지난해 일본에 진출한 동갑내기 고종수(교토 퍼플상가)와는 형제나 다름없는 두터운 정을 나눴을 정도.

귀화의 꿈을 이룬 데니스는 경기당 3명으로 제한된 용병 출전 제한 규정에 상관없이 프로무대를 누빌 수 있게 돼 ‘더 많은 출전수당’이란 과외 수입도 챙길 전망이다.

한국이 좋아 귀화를 결심한 또 한 명의 선수는 성남의 크로아티아 출신 싸빅(30). 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싸빅은 팀 동료 데니스의 한국어 선생님을 자처할 만큼 ‘경상도 사투리’에 능통하다. 싸빅은 그러나 귀화에 필요한 만 5년의 한국 체류기간을 채우지 못해 내년을 기약중.

○“귀화 1호 신의손 영원한 현역”

국내 축구계 귀화 1호는 신의손(43). 러시아 타지키스탄 출신인 사리체프는 92년 성남에 입단한 뒤 팀의 3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신의 손’이란 별명을 얻었던 명 골키퍼. 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이 98년 국내 골키퍼 육성을 이유로 외국인 골키퍼 기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안양 LG의 플레잉 코치로 변신했다.

하지만 ‘영원한 청춘’을 자처하며 철저한 몸 관리로 체력을 유지하던 사리체프는 현역 복귀를 희망했다. 골키퍼 보강이란 숙제를 안고 있던 안양과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한국 국적을 취득, 2000년 만 40세의 나이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현역시절의 별명을 한국 이름으로 선택해 ‘구리 신씨’의 1대조가 된 신의손은 올 시즌도 안양의 수문장으로 맹활약중이다.

○‘조국보다는 월드컵 출전이 우선’

성남의 용병 샤샤.

세계적으로 축구선수들이 국적을 바꾸는 이유는 정치적 망명 등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월드컵 등 빅 이벤트 출전을 겨냥한 경우가 대부분. 국내에서도 2002월드컵을 앞두고 몇몇 선수가 한국 국적 취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성남의 유고 용병 샤샤와 전남 드래곤즈의 브라질 용병 마시엘. 두 선수는 지난해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을 전제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모두 한국 체류기간 5년을 채웠고 유고와 브라질에서 16세 이상 대표팀 경기에 출전한 경력이 없어 귀화 후 한국 대표로 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굳이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기용해야 할 만큼 국내에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딱 잘라 거절하는 바람에 귀화는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적을 바꾼 선수에 대해 이전 국가에서 16세 이상의 대표팀에 선발돼 단 한 경기라도 출전했을 경우 새로 국적을 취득한 국가의 대표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서 청소년대표로 뛴 적이 있는 데니스는 한국 대표가 될 수 없다. 부산 아이콘스에서 활약했던 유고 출신 마니치도 태극마크를 노리고 한국 귀화를 추진했으나 이 조항에 걸려 물거품이 된 뒤 일본팀으로 이적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일본에선…월드컵 겨냥 산토스 등 귀화 ‘밥값’ 못해

최근 귀화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선수는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25). 폴란드 출신인 그는 2002월드컵을 단 4개월 남기고 귀화해 2002월드컵에서 ‘헤딩머신’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머리로만 5골을 잡아내며 독일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월드컵 본선진출의 ‘숙원’을 풀기 위해 94년부터 축구의 나라 브라질출신 선수들을 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94년 월드컵 예선에선 라모스를 귀화시켰지만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어 98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J리그에서 뛰고 있던 로페스를 귀화시켰지만 본선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지난해 열린 한일월드컵 때도 산토스란 브라질 선수를 설득해 대표로 내세웠다. 산토스는 일본 J리그에서 9년 동안 뛴 특급 공격수로 최전방뿐 아니라 처진 스트라이커, 측면 미드필더 등을 다양하게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팀이 16강 진출이란 쾌거를 이루는 동안 그라운드보다는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 ‘밥값’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