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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칼럼]심청, 부안 앞바다로 가다

입력 | 2003-07-23 18:57:00


지금부터 4반세기 전인 1979년, 나는 갖가지 사전과 씨름하면서 거의 반년 동안을 내 힘엔 벅찬 핵에너지 문제에 관한 논쟁을 이해해 보려 고생한 일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전해에 우연히 꼭 80일간에 걸친 세계 일주 여행을 하면서 그때 마침 절정에 이르렀던 서독의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격렬한 찬반 시위를 목격했다. 그리고 귀국해서 얼마 안 되어, 79년 3월 28일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핵 사고라 하는 스리마일 섬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74년 발표한 미국의 한 보고서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심각한 핵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50억분의 1에 불과하다고 밝힌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었다.

▼지원금 3000억에 핵폐기장 신청 ▼

당시 내가 논문들을 읽고 가장 많은 계몽과 감명을 받은 과학자를 찬반 양측에서 한 명씩만 뽑는다면 핵 발전 찬성론 쪽에서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 교수(통일 독일의 첫 대통령의 형), 반대론 쪽으론 당시 아직 소장학자였으나 대서양 양안에서 활약하고 있던 미국의 애모리 로빈스 박사.

나를 깊이 생각하도록 한 것은 찬성론을 편 바이츠제커 교수의 신중한 입론-원자력에 관한 한 당대 제1의 전문가라 할 그조차도 핵에너지의 문제는 시민이나 정치가만이 아니라 전문가도 그 전모를 혼자 판단할 수 없다고 고백한 학자적 양심이다(그건 결코 일개 도지사, 군수가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핵에너지에 관한 한 양심과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찬반을 초월해서 그 위험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출발한다. 문제는 다만 위험성의 정도 또는 크기이며, 그 통제 가능성 여부다. 당시 바이츠제커 교수는 다음과 같이 현자(賢者)다운 말을 하고 있었다. “무릇 효능이 있는 것은 또한 위험한 것이다. 처방이 틀려도 환자를 죽이지 않는 약이란 처방이 맞아도 환자를 구하지 못한다는 의사들 사이의 격언(格言)이 있다.”

로빈스 박사의 논문을 읽고 깨달은 것은 비단 대형사고만이 아니라 안전 운행되고 있는 핵발전소에도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핵폐기물의 문제다. 그런데 이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방법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설혹 핵에너지를 포기하고 재래식 화석 에너지에만 의존한다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표의 장기적 기온 변화로 인류의 장래에 확실하게 먹구름을 일게 한다는 것이다. 사고사(死)건, 자연사건 천상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에게 죽음을 피할 길은 이미 없다는 얘기일까.

젊은이보다는 죽음이 더욱 자명해진 노인일수록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버릇 때문일까. 그보다도 쏟아져 나오는 핵에너지에 관한 글들을 일일이 챙겨보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 뒤 오랫동안 그 문제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 사이 1986년 4월 26일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최악의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났다. 거기에서 누출된 방사능으로 이미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앞으로도 수십만명이 더 사망할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70년대 중반, 당시 가동 중인 전 세계의 원자로에서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00만년(!) 만에 한 번 있을 것이라는 미국 원자력 당국의 보고서가 나온 지 불과 10년 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핵 발전에 신중한 찬성론을 펴온 바이츠제커 교수도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대론자로 돌아섰다.

▼核 안전성 논의수준 높아져아 ▼

우리나라는 전력의 40%를 핵 발전에 의존하는 세계 6위의 원전 운영국이라지만 핵의 안전성에 관한 공론권의 논의 수준은 몇 십위쯤 될까. 78년 최초의 원전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래 4반세기 만에 올해 겨우 핵폐기물 처리장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전북 부안군 위도다. 전국 어디서도, 아무도 원치 않은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를 유독 부안군이 단독 신청한 이유가 3000억원의 개발 지원금 때문이라니 가슴이 아프다 못해 기가 막힌다. 인공 장기를 이식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심 봉사 눈뜨게 해주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얘기를 듣고 있나, 내 귀를 의심해 본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