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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젝트]中 네이멍구 防砂林 조성

입력 | 2003-07-24 18:10:00

구부치사막의 동쪽 끝을 막고 들어선 대규모 포플러 숲 덕분에 언거베이 마을은 더 이상 사막화가 진전되지 않고 서서히 토질이 회복되고 있다. -언거베이=이영이기자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언거베이(恩格貝)는 구부치사막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몽골어로 ‘길상평안(吉祥平安)’이라는 뜻이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이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래태풍이 휘몰아쳐 올 때마다 양들을 놓아먹이던 풀밭이 사라지고 사막이 확대되면서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모래바람을 탓하며 새로운 풀밭을 찾아 떠났다.

언거베이처럼 사막에 집어삼켜지는 마을은 한두 곳이 아니다. 중국 영토의 18.2%(174만km²)가 이미 사막이고 해마다 서울시의 5배나 되는 면적(3436km²)이 사막으로 변해간다. 모래태풍은 수도 베이징(北京)을 덮치고도 남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한국까지 날아와 심각한 황사현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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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대자연의 횡포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년 전 집념에 찬 한 일본인 교수가 언거베이 마을에서 나무 심기 운동을 시작한 후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의 나무 심기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네이멍구 최대의 상업도시 바오터우(包頭)에서 자동차로 1시간반 남짓. 언거베이 마을에 가까워지자 누런 사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창문을 열자 금세 눈이 따갑고 입안에 모래가 으적으적한다.

다시 10여분쯤 달렸을까. 가로로 길게 펼쳐진 녹색띠가 갑자기 나타났다. 높이 5∼6m는 족히 됨직한 짙푸른 포플러숲이었다. 몽골족 운전사는 “서쪽에서 밀려오는 모래태풍을 막아주는 굳건한 보호벽”이라며 “숲이 생긴 덕분에 한결 살기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언거베이 생태시범구’란 푯말과 함께 작은 동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마을 청년 진융(金勇·30)은 “숲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사막이 될 뻔한 마을을 다시 살려준 도야마 세이에이(遠山正瑛) 선생”이라며 이 마을과 그의 오랜 인연을 소개한다.

올해 97세의 고령인 도야마 일본 돗토리대 교수는 고향인 돗토리에서 평생 사구(砂丘·모래언덕)와 씨름해온 원예학자. 불모지 모래밭에 농작물을 심는 데 성공해 고향 마을을 가난에서 구한 그는 1972년 중일 국교 수립을 계기로 중국의 사막에 눈을 돌렸다.

77세가 되던 1984년부터 중국을 방문하기 시작해 1991년부터는 아예 1년의 절반 이상을 언거베이에 머물며 토양과 수종을 연구했다. 일본에서는 그와 뜻을 함께 하는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일본사막녹화실천협회가 발족됐다.

그러나 한두 평도 아닌 끝없는 사막에 어떻게 나무를 심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래서 일본인이 언거베이에 찾아와 나무도 심고 관광도 하는 ‘나무 심기 관광’ 패키지를 고안해냈다.

첫 회부터 60명이 참가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녹색협력대’라고 불리는 참가자들은 1주일 이상 이 마을에 머물면서 무너져 내리는 사막에 구덩이를 파고 또 파 가느다란 포플러 묘목을 심으며 생명의 존엄성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러기를 12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본인은 1만명에 육박하고 숲은 포플러 300만 그루로 늘어났다.

10년이 넘게 숲을 지켜온 야스다 기요시(安田廉)는 “사막에 나무 심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며 “절망감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놓는다.

가장 뼈아픈 경험은 100만 그루 식수를 돌파한 이듬해인 1996년 큰비가 내렸을 때였다. 숲 한가운데가 갈라져 자식보다 소중하게 키워온 나무 수만 그루를 삼켜버린 것. 그때부터 다시 모래밭과의 격투가 시작됐다. 말라버린 나무는 뽑아버리고 살릴 수 있는 나무를 하나하나 기록해 가며 더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녹색장벽’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자 사막은 더 이상 마을을 침범하지 않게 됐고 숲 속에는 새들과 벌레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막과의 싸움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뒤늦게 사막화 위기를 깨달은 중국 정부가 이 마을을 식림(植林) 모델지구로 지정하자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개척의 꿈을 안고 찾아오면서 10여년 전 20여명에 불과했던 마을 인구는 1000여명으로 늘었다.

숲을 보러 오는 중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다. 이 지역 기업가인 왕밍하이(王明海·51) 실업발전유한공사 총경리(사장)는 “600만평에 이르는 이 마을에 모두 나무를 심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단지로 만들겠다”며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언거베이 마을의 작은 성공을 계기로 각국의 지원단체들이 중국 전역에서 나무 심기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일본만 해도 50여개 비정부기구(NGO)가 이 마을 사례를 본떠 크고 작은 규모로 사막녹화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 독일 영국 등의 정부와 민간단체들도 중국의 ‘녹색장벽’ 만들기를 적극 돕고 있다.

중국 한 나라의 일이라고 외면하고 있기에는 사막화의 폐해가 너무나 심각하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막화를 막고 푸른 숲을 되살려내는 거대한 지구촌 프로젝트에, 조용하지만 긴밀한 국제연대가 이제 막 생겨나고 있다.

언거베이(중국 네이멍구)=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나무를 자식처럼…'숲의 수호신'▼

언거베이에서 ‘숲의 수호신’으로 통하는 야스다 기요시가 자신이 심은 포플러를 살펴보고 있다. -언거베이=이영이기자

언거베이(恩格貝)에서 12년째 상주하다시피 해온 일본사막녹화실천협회 야스다 기요시(安田廉·54)는 이 마을에서 숲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통한다. 일본 돗토리(鳥取)현에서 환경운동을 하다가 사막녹화에 뛰어든 그는 어디에 있는 나무가 어떤 상태인지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

“살아 남아준 나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그는 날마다 숲을 둘러보며 살수차에 호스를 연결해 일일이 물을 주거나 말라죽은 나무들을 뽑아낸다. 추위와 건조한 날씨에 강한 포플러이지만 살아서 뿌리를 내리는 비율은 85% 수준.

그러나 나무가 죽었다고 해서 완전한 실패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번 나무를 심었던 자리는 조금이라도 토질이 좋아져 다시 다른 묘목을 심으면 쉽게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요즘 그는 토질의 미묘한 변화에 부쩍 신경을 쏟고 있다. 나무들이 수년간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흙이 조금씩 엉겨 붙기 시작하고 거름을 만들 수 있는 부양토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 한낮이면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70도까지 달구어져서 세균조차 살지 못하던 무균질의 사막에 숲이 생기자 새들이 날아들고 벌레가 꿈틀거린다. 얼마 전에는 숲에서 여우를 봤다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이 숲에 포플러가 아닌 과실수나 한약재 등 경제적 효과가 있는 나무를 심는 것. 그러려면 포플러로 일단 토질을 회복시켜 완전한 부양토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 해도 20년 이상 걸리는 일. 초창기에 조성한 숲이라 하더라도 10년을 더 가꿔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세상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생명을 지켜준 지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남은 시간을 다 써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사업을 하면서도 한시가 아깝다며 다시 숲으로 뛰쳐나갔다.

언거베이=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간쑤省등 5곳 자금 - 기자재 제공▼

중국 정부가 2050년까지 서부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사막화 방지를 위한 조림사업이다.

황사 등 환경문제는 차치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사막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642억위안(약 9조2000억원·중국 ‘사막화방지통제연구개발센터’ 추산)에 달한다.

사막화를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사막이 많은 북부지역을 동과 서, 중부로 나눠 방사림을 조성해 산림비율을 13%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황사 공동대책 차원에서 2001년부터 5년 동안 500만달러를 지원하며 조림사업을 돕고 있으며 동북아산림포럼 등 시민단체들도 최근 산림조성 지원에 나섰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이뤄지는 한국 정부의 조림사업 지원 지역은 신장(新疆) 투루판과 네이멍구(內蒙古)의 사막지대, 간쑤(甘肅)성 바이인(白銀) 등 모두 다섯 군데. 자금지원뿐 아니라 조림전문가를 파견하거나 기자재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이인은 사막과 황토고원의 중간지대로 수분증발량이 강수량의 8.6배에 달하는 건조지역으로 한국 지원의 대형 프로젝트가 진척되고 있다. 여의도의 1.8배나 되는 면적(466만평)의 황토 야산들이 키 2∼3m의 측백나무나 포플러 등으로 ‘녹색옷’을 입기 시작한 것.

때마침 이달 초 조림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바이인을 방문한 정윤길(鄭胤吉) KOICA 과장은 “중국의 사막화 방지 사업은 서두르지 않으면 몇 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바이인(중국)=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