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기민 프로듀서가 ‘여고괴담’ 기획안을 들고 찾아간 영화사마다 거절을 당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3편까지 이어지는 시리즈로 정착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98년 ‘여고괴담’ 1편은 서울에서만 63만명이 봤으며 이듬해 제작된 2편은 흥행에는 참패 (서울관객 9만4400명)했으나 여러 매체에서 그해 최고의 영화로 손꼽을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3편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이 8월1일 개봉된다. 충무로의 창의성이 담긴 시리즈로 곧잘 할리우드의 ‘에이리언’ 시리즈와도 비견되는 ‘여고괴담’은 어떤 점이 특별한가.
○ 신인 감독과 배우의 산실
‘여고괴담’ 1편에는 8억, 2편은 10억, 3편에는 15억원의 제작비가 각각 들었다. 1∼3편의 감독과 주연배우는 모두 신인.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20억원을 웃돌고 스타를 잡지 못해 안달인 실정을 감안하면, ‘여고괴담’시리즈는 많지 않은 예산, 신인 기용의 두 원칙을 갖고도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1편은 박기형 감독과 김규리 최강희 박진희 등을 배출했으며 2편은 김태용, 민규동 감독과 박예진 김민선 공효진이 나왔다. 3편의 특이한 점은 윤재연 감독과 주연배우 박한별 송지효 조안을 비롯해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까지 주요 제작진이 모두 신인 여성들이라는 것.
1∼3편을 모두 제작한 영화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각 편마다 젊은 배우와 영화인력을 발굴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3편에서는 여고를 졸업한지 얼마 안된 여성들이 제작 주체로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속편’이 아닌 ‘변주곡’
‘여고괴담’ 1편은 교육 현장의 폭력성을 공포 장르와 결합시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강력한 항의를 초래할만큼 사회적 이슈가 됐다. 반면 2편은 1편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2편은 공포영화라기보다 성장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동성애적 감정을 겪는 소녀들의 한 시기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다. 같은 배우가 계속 나오는 ‘속편’의 개념보다 ‘변주곡’처럼 매번 주제와 스타일을 달리하는 방식이 되레 ‘여고괴담’이 생산적 시리즈로 수명을 이어나갈 가능성을 높여줬다.
3편의 주제는 여고생들의 꿈. 경쟁구조 속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해 갖는 콤플렉스와 경쟁심리, 우정과 질투 사이에서의 갈등과 그가 빚어낸 비극을 그렸다. 3편에서는 1편만한 사회적 함의도, 2편만큼 독창적인 스타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공포의 점증효과도 크지 않아 미숙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여고괴담’이라는 브랜드를 놓고 독립된 이야기들을 잇는 독특한 실험의 의의는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 유일한 공포영화 시리즈
신인 감독과 배우를 발굴해낸 것외에 공포 영화라는 침체 장르를 부활시킨 것도 ‘여고 괴담’의 미덕중 하나다. 3편까지 제작되면서 성공적인 공포영화 시리즈로 자리잡았고 ‘하얀방’ ‘R-Point’ 등 공포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작가(이용연)가 참여했다는 점은 호러 전문 작가들이 집필한 미국의 ‘스크림’이나 일본의 ‘링’시리즈와 닮았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한국영화의 장르가 다양한 듯 해도 안정된 토대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여고괴담’시리즈가 한동안 침체됐던 공포 영화 장르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줄거리는▼
소희(박한별)와 진성(송지효)은 예고 무용반의 단짝 친구다. 소희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무용반의 총아인 반면, 진성은 소희의 재능에 밀려 2등을 면치 못한다.
진성은 한 명만 참가할 수 있는 서울 발레 콩쿠르에 소희를 내보내겠다는 교사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진성은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학교 기숙사 옆길 여우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