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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 ‘NO’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나라

입력 | 2003-07-24 18:37:00


일본과 영국의 정상회담이 이뤄진 하코네(箱根)에 애꿎게 비가 내리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맑은 날에는 이 방에서 후지산이 잘 보이는데…”라며 섭섭해했다.

편한 복장으로 만난다고 했는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넥타이 차림이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데다 미국과 영국이 위협을 과대 선전해 전쟁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에서는 정부의 정보조작을 언론에 폭로한 과학자가 자살해 블레어 총리가 궁지에 몰려 있다.

블레어 총리는 미국 편에서 함께 싸우는 영국의 전통적 대미외교 노선을 견지함으로써 대미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라크의 경우는 예상과 달리 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지난주 방미 때 블레어 총리는 미국 의회에서 연설했다.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이어 영국 총리로서는 네 번째 연설이었다. 의회는 초당파적으로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원내총무에게서 1812년 독립전쟁 때 영국군이 의회 도서관을 불태웠다는 얘기를 듣자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사과드립니다” 하고 유머를 던져 원내를 한바탕 웃기기도 했다.

미영동맹에는 영어 말고도 유머라는 공통의 끈이 존재한다. 그러나 같은 영어권 동맹이라고 해도 각양각색이다.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는 영국 이상으로 미국 편을 들고 있다. 그는 “미국과 호주는 가치관을 공유한 동맹”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테러 공격에는 선제공격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해 이슬람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반발을 샀다. 호주의 이러한 대미 일변도는 일본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지 모른다. 미일동맹은 아시아 국가간의 다각적 교섭을 촉진하는 형태로 활용돼야 한다.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대통령보좌관은 “관계 회복에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최근 방일한 캐나다의 윌리엄 그레이엄 외무장관은 “미국뿐 아니라 국내 신보수주의자들한테도 모질게 당하고 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최악의 경우 미국이 캐나다에 어떤 보복을 한다는 말인가. 캐나다는 미국의 제1 무역상대국이다. 보복하면 미국도 다친다”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 캐나다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변에 위협이 없는 캐나다와 달리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아시아 태평양의 해양 안전과 안정도 절실하다. 동맹에 따른 억제력, 방위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영일 정상회담 중 블레어 총리는 “미국을 다시 단독행동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유엔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세계의 안정세력’이자 ‘아시아에서 미영의 자연스러운 파트너’인 일본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다.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기 전 미리 미영동맹형의 미일동맹상을 그려 보인 것일까.

일본은 그런 분수에 넘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나라도 일본에 딱 맞는 모델이 될 수 없다. 일본 스스로 국익과 전략에 기초해 동맹관계의 방향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국의 행방에 대한 블레어 총리의 견해는 너무 낙관적인 것인지 모른다. 신보수주의자와 종교를 배경으로 한 우익세력의 대두로 미국의 동맹정책은 ‘일품요리 동맹’으로 나가고 있다고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동맹국들은 동맹으로 얻어진 과실은 전부 미국의 안줏거리가 되고, 미국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시되어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위험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세계 최강 국가 미국과의 동맹은 ‘특권 클럽’에 가입하는 것과 같다. 문지방은 높지만 얻는 게 많다. 미국은 올라타면 우쭐해지는 죽마(竹馬)를 동맹국들에 선물로 준다. 그러나 죽마가 너무 높으면 위험 또한 더 커지는 법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