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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월드 워치]지구촌 여름나기…‘3國 3色’ 바캉스

입력 | 2003-07-27 18:03:00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요즘으로서는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불경기 때문에 저렴한 휴가지를 찾거나 아예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日 “집에서 쉴래”…직장인 42% “휴가비 감당못해”▼

도쿄(東京)를 비롯한 일본 대도시의 보통 직장인들은 “휴가도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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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이상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비 숙박비로 집 떠나 어디로 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도쿄도가 최근 직장인 3700여명을 상대로 여름 휴가계획을 조사했는데 ‘집에서 푹 쉬겠다’는 대답이 42.4%로 ‘여행(32.2%)’을 크게 앞질렀다.

휴가철 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비 때문.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가량 걸리는 센다이(仙臺)일대를 2박3일간 다녀오는 여행상품은 1인당 5만3200엔(약 53만원). 기타 비용을 제하고도 4인 가족이면 최소 21만3000엔(약 213만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40∼44세 직장인의 한달 평균 월급 30만엔에 비해 보면 무척 비싸다.

도쿄 직장인의 올여름 평균 휴가는 5.8일로 지난해보다 0.2일 줄었다. 휴가를 줄인 이유로 대부분 ‘일이 많아져서’ ‘직장 분위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규정상으로는 2주 연속 휴가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직장상사에게 말조차 못 꺼낼 형편이라고 답했다.

2주 연속 휴가를 신청하면 상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질문에는 ‘휴가도 좋은데 일은 어떻게 하려고’(38%) ‘조금 짧게 가지’(36%)하면서 얼굴을 찡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 밖에도 ‘휴가 다녀오면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냐’ ‘아예 사표를 쓰고 가지 그래’ 등 핀잔을 예상하는 직장인도 상당수였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美 “안전이 최고”…워터파크 인기▼

경기침체와 테러공포 등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워터파크가 여름철 가족 휴가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남녀 한쌍이 미국 텍사스주 실리터반 워터파크에서 물놀이 기구를 타고 있다. -사진제공 실리터반 워터파크

미국에선 요즘 체감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고 테러 위기감이 남아있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꺼리는 분위기다. 경기가 좋던 시절의 유람선 여행이나 해외여행도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워터파크가 한여름 인기 가족 휴가지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캐리비안 베이처럼 파도 풀과 튜브 타기 등의 시설을 갖춘 전국 수백곳의 워터파크에 올해 5000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도 작년보다 3% 늘어날 전망.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테마파크의 매출 증가율이 1%대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치를 감안하면 워터파크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인기가수 돌리 파턴이 테네시주에 2200만달러를 투자해 지은 ‘돌리 스플래시 컨트리’는 워터파크와 함께 테마파크인 ‘돌리우드’를 갖추고 인근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 조지아주의 ‘스플래시 아일랜드’는 가족끼리 물대포 싸움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입장료는 20∼30달러 수준.

미국 전역의 워터파크는 최근 시설을 확장하고 안전 위생 등에 신경을 썼으며 주변 숙박시설도 늘어나 올해 인파가 크게 몰려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웨튼와일드’에선 부모들이 시계 모양의 세이프티존이라는 장치를 통해 어린이들이 어디에서 놀고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5층짜리 블랙홀 ‘라이드’는 사람이 많을 때는 80분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넓이가 26만m²에 이르는 텍사스 뉴브라운펠스의 ‘실리터반 워터파크’는 무려 74개의 슬라이드를 갖춰놓고 있으며 롤러코스터처럼 45분 동안 타는 1.6km짜리 워터코스터도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佛 “값싸게 오래”…7월부터 두달간 바캉스 떠나▼

‘프랑스인들은 바캉스에 목숨을 건다.’

1년 내내 지극 정성으로 거동이 불편한 배우자를 간호하던 남편이나 부인도 바캉스 때만큼은 배우자를 버려두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7, 8월 파리에 있는 사람은 외국인이나 이민자”라는 말도 있다. 신문들도 여름 휴가철이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두께가 얇아진다.

프랑스의 법정 휴가는 5주. 여기에 연월차 휴가와 주당 35시간 근무 초과분을 휴가로 대체해 1년에 두 달 가까이 휴가를 즐긴다. 주5일 근무에 각종 공휴일, 잦은 파업으로 인한 휴무까지 가산하면 ‘1년 내내 휴가’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 많은 공무원들은 5, 6월 두 달간 총파업을 벌인 뒤 7월부터 바캉스를 떠났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남아도는 휴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고민. 무엇보다 값싸게 즐기는 게 관건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80% 이상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낸다. 그것도 호텔이나 민박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장기간의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 60%가량은 고향의 부모나 친척 친구 집 또는 시골 별장에, 15%가량은 캠핑카나 텐트촌에 머문다.

프랑스인들은 직장이 있는 대도시에서는 월세를 살더라도 시골에 ‘제2의 집(la Maison Secondaire)’, 즉 별장을 갖고 싶어 한다. 별장이 있는 사람들은 별장을 바꿔 휴가를 보내거나 아는 사람끼리 도시와 시골의 집을 바꿔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휴가철 파리에 머무는 프랑스인들은 센 강변에 모래를 부어 해변 기분을 낸 ‘파리 플라주(plage·해변)’나 구청별로 벌이는 예술 행사를 찾아 ‘저렴한 휴가’를 즐긴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