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일을 더 많이 할 때 포기하는 것은 여가활동이며 휴식이다. 사람이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소득이 일정수준 올라가면 여가에 대한 갈증도 더 커진다. 그래서 소득이 어느 정도 커지면 임금이 올라도 노동의 공급량이 늘지 않는다.
3년 전 주5일 근무제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요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지금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 더 힘을 받는 것 같다. 경제상황이 워낙 힘들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 문제가 이번 주를 전환점으로 가닥이 잡힐 것인가 주목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정부의 주5일 법안과 별도로 내달 6일까지 사용자측 단일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노동계 단일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양쪽은 이 안을 기초로 내달 8일 협상을 재개한다. 노사 양쪽의 협상안이 이번 주 중에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사용자측은 이미 마지막 패를 내보인 셈이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주5일제에 대한 정부안이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것은 못 되지만 이것이라도 빨리 정착돼 분규의 쟁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 정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 발짝 후퇴한 26일 경총의 선언이 오히려 협상용 카드처럼 보인다.
이 문제와 관련해 노사 어느 한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새로운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시점에서 당사자들의 견해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입 이후의 임금 보전, 휴가 일수, 도입 시기 등을 놓고 양측이 좋은 조건을 따내기 위해 애쓰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여건이다.
소비와 투자가 쪼그라들고 수출로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설상가상 수출을 위협하는 환율전쟁 조짐이 심상찮다. 민간연구소들은 잇따라 올해 성장률을 낮춰 잡고 있다. 주변여건도 좋지 않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인화성 높은 시한폭탄이고 정치권 움직임도 어지럽다. 무엇보다 정부의 ‘기업 살리기’ 의지는 아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금 와서 주5일 논의를 없었던 일로 되돌리기는 힘들다. 이미 요구와 기대치가 높아져 있고 은행 등 금융업계의 주5일제 도입,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결과 등으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기업에 견디지 못할 짐이 되고, 경쟁력을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방관하기에는 상황이 절박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 문제로 이미 한 달째 파업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노사 부문에서라도 빨리 문제를 일단락 짓고 다시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여기서 정부의 의지는 중요하다. 이것이 ‘하투(夏鬪)’의 이슈가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공장을 멈추는 빌미가 될 수도 없다. 당사자간 자율협상을 존중하되 정부가 더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한 대응이 오락가락할 경우 ‘정부의 기업 살리기 의지’는 영영 신뢰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