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리더십 부재(不在)로 몸살을 앓고 있는 느낌이다. 청와대 여야(與野) 가릴 것 없다. 대통령은 여당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고 여당 대표는 수뢰 혐의로 얼굴을 들기 어려운 처지다. 야당 대표 역시 뭔가 보여줄 것 같더니 아직은 이른 모양이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고 제왕적 야당 총재가 소속 의원들을 꼼짝 못하게 하던 3김 시대의 리더십은 더는 통할 수 없다. 여권의 당정분리나 야당의 권력나누기는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당정분리든 권력분점이든 그것이 국가운영과 민생에 도움이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온통 콩가루 집안이 돼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조차 모르게 한대서야 죄다 헛일이다.
▼난장판이 된 당정분리 ▼
크게 보아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양김(兩金) 시대로 이어져온 우리 현대사에서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임기 5년 전체가 과도기일 수도 있다. 이승만 박정희는 말할 것도 없고 양김 역시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부분 이뤄냈다고 하더라도 ‘제왕(帝王)’ ‘가신(家臣)’ ‘인치(人治)’가 상징하는 권력마인드는 여전히 비민주적이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그걸 극복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과정으로서의 과도기가 지금처럼 시작부터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면 시대 인식에 따른 확고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공동체가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하고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승만은 건국을 내세웠고 박정희는 근대화를 앞세웠으며 양김은 민주화를 내걸었다. 노무현의 슬로건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은 ‘소득 2만달러 시대’와 ‘동북아 경제중심’을 말한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변화란 시대적 욕구가 채워질 수 없다. 변화의 근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변화의 바탕은 통합이다. 국론이 갈가리 찢겨서야 그 어떤 올바른 변화도 이루어내기 어렵다. 통합의 기본은 설득과 조정 그리고 법치(法治)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다섯 달이 지났다. 유감스럽게도 노 대통령은 변화의 바탕과 통합의 기본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령 그 방향이 그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조급하고 거칠게 나서면서 오히려 세상을 분열시켰다. 포용보다 대립의 각을 세우면서 변화와 개혁의 동력을 너무 빨리 허비했다. 지지율 급락은 그런 흐름의 반영이다.
민주당은 지금 여당이라기보다는 ‘노무현 비토그룹’에 가깝다. 기존의 비노(非盧) 반노(反盧) 그룹만이 아니다. 정대철(鄭大哲) 대표를 비롯해 친노(親盧) 중도그룹의 주요 인물들조차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과거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에 비추어 긍정적 현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궁지에 몰린 대표는 청와대를 원망하고 사무총장은 그런 대표를 위해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요구한다. 총무는 자신의 지역구에 핵폐기장을 유치키로 한 부안군수를 대통령이 격려했다며 핏대를 세운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이러라는 당정분리가 아니다.
▼거기 누구 없소? ▼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의 리더십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새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을 ‘150억+α’로 하기로 작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재의(再議)할 생각이 아니었으면 그 또한 말을 바꾸지 말아야 했다. 어차피 소모적인 일로 정부 여당과 싸우느니 야당으로서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했어야 했다. 그래야 ‘최틀러’였다.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가 물타기이고 짜맞추기라고 해도 “우리는 더 이상 공개할 것 없다”고 하는 최 대표의 주장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최 대표는 최소한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좋다. 함께 까자. 다만 당장은 당이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하자. 그 밖에 과거의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관행에 대해서는 국민에 용서를 구하자. 그런 다음 새 법을 만들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자.’ 그래야 당당했다.
리더십 부재의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여보세요. 거기 (리더십 있는) 누구 없소?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