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도시 탄생 143주년 기념식에 자매도시인 부산시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석해 5일간 머무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로 연해주의 수도이자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시베리아산 원유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일대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을 위한 동서부의 노선 결정을 두고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 도시이기도 하다.
바이칼호 맞은편 이르쿠츠크 앙가르스크 지역에서는 약 4억t의 원유가 발견됐고, 그 추정 매장량은 약 10억t이라고 한다. 이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원유 확보를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송유관의 경로를 극동 러시아 항구인 나홋카까지 건설하는 일을 관철하기 위해, 중국은 동시베리아 앙가르스크로부터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다칭(大慶)까지 송유관을 건설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를 설득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5월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앙가르스크∼다칭 구간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자 일본도 뒤질세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것도 모자라 6월 중순에는 전임총리가, 6월 하순에는 외상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각각 방문해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일본이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나홋카 송유관 건설을 선호하는 듯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이 원유 확보를 위해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그 현장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석유 한 방울 생산되지 않는 나라, 원유를 몽땅 수입해서 정유하고 있는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웃의 원유쟁탈전을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은 현재 러시아에 19억5000만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원유 확보에 나설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1곳 한국 총영사관에는 총영사를 포함해 6명의 영사가 근무하며 전체 러시아 지역의 4분의 3을 관할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하바로프스크 세 곳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고, 총영사관마다 14명의 근무자가 일본의 러시아 극동지역 진출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외교정책을 전면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9만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고, 한때 번창했던 발해의 민족적 자존심이 살아 숨쉬는 곳이 러시아 극동지역이다. 동북아 지역의 중국 일본 러시아뿐 아니라 북한의 김 국방위원장까지 드나들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극동의 요충지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다.
이 지역에 대해 정부는 물론 1992년 자매결연을 체결한 후 소극적 교류를 하고 있는 부산시 또한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북아 중심’ 건설이라는 국가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극동의 각축장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 관심, 국익을 위한 새로운 접근, 새로운 교민정책의 수립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영 부산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