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문광고 100년’전 포스터. -사진제공 신문박물관
“빚지고 울지 말고 국산품 애용하자-국보 원자탄 빈대약.”(동아일보, 1946년 6월 1일자)
“우리 동포 부인이시어 ‘명지모(命の母)’를 복용하셔서 부인제병을 근치하시고 아기를 낳아서 행복스런 가정을 이루시라.”(조선중앙일보, 1935년 12월 6일자)
광고는 일상의 소비생활을 가장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매개체이다. 이 때문에 광고 카피에는 상품 정보만이 아니라 시대적 감성과 의식이 담겨 있다.
8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4층 신문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한국의 신문광고 100년-신문광고로 보는 근대의 말과 사물’은 신문광고를 통해 근대의 일상생활 문화를 살펴보는 자리이자, ‘세대간의 대화’를 이어주는 추억의 전시회. 개화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광고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이명래 고약, 럭키치약, 진로소주, 활명수, 용각산, 금성 라디오 등 광고 속에 등장했던 상품들도 전시돼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재미를 더해준다.
국내 최초의 신문광고는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에 실린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世昌洋行· Edward Meyer & Co.)’의 광고. ‘아이나 노인이 온다 해도 속이지 않겠소’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개화기 열강들의 경제침탈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광고를 보면 주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소박한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경향신문 1908년 10월 2일자 ‘이런 일이 세상에 어찌 잇으리오’라는 광고는 경기 평택에 사는 한 과부가 간음을 했다는 누명을 썼다며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1899년 5월 3일자 황성신문에는 ‘새문안에서 잃어버린 측량기의 추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4원을 사례하겠다’는 광고가 실려 웃음을 자아낸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최대의 광고주는 제약회사.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신성당 7대 명약’ 광고는 폐병 늑막염 치질 매독 임질 대하증 등 당시 가장 흔했던 병명을 짐작케 한다. 1960년대 부잣집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던 ‘원기소’의 광고문안은 ‘위대한 민족의 체력을 향상시키자!’였다.
1930년대 안경, 양산, 모자, 궐련 등 서구식 생활 잡화와 백화점 광고에서는 당시 신세대 ‘모뽀(모던-뽀이)와 모껄(모던-껄)’의 패션을 살펴볼 수 있다. ‘모자는 문명의 관(冠)’이라는 광고 카피에서는 ‘서양=문명, 전통=미개’라는 의식이 엿보인다.
주제별 전시도 흥미롭다. ‘단발령과 이발기구’ 코너에서는 1895년 단발령이 시행된 뒤 이발기구와 모자상점, 이발소 등에서 대거 광고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이발기구, 빗, 모자 등도 함께 전시했다. ‘영화광고와 포스터’ 코너에서는 1935년 단성사의 ‘춘향전’ 광고를 비롯해 ‘황금박쥐’ ‘로버트 태권V’ 등 추억의 영화광고를 볼 수 있다. 신문박물관 허용 연구원은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이 추억 속의 광고와 물품을 보면서 지난 세대의 일상생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라고 소개했다.02-2020-1850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