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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정치와 돈' 금배지의 가계부

입력 | 2003-07-31 16:45:00

이종걸 의원,                           원희룡 의원


“돈을 퍼부어도 효과가 없으면 억울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반대로 돈만큼 표가 움직이면 ‘돈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생긴다. 그래서 돈을 쓴다.”

지방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는 한 정치인의 말이다. ‘굿모닝 게이트’의 와중에서 취재팀은 정치인들이 겪는 ‘돈과의 갈등’을 듣기 위해 비교적 ‘깨끗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몇몇 국회의원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명으로 인터뷰하겠다는 이는 드물었다. “혼자 깨끗한 척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라는 이도 있었다. 두 초선 의원이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 민주당 이종걸 의원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이 의원(경기 안양시 만안구)은 2002년 지구당 운영비 회계 장부부터 꺼냈다.

‘식품 1만1250원. ○○슈퍼, 안양3동 △번지, 사업자등록번호 …’ 등 지출입 명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2002년 지구당 지출 총액은 2억4126만6442원. 후원금과 중앙당 지원금 등 지구당 수입은 총 2억4169만2170원. 세비를 합친 지난해 총수입은 약 3억원. 약 5000만원은 의원회관 사무실 유지비로 쓰였다. 의정생활 첫 해에는 2500만원의 적자를 냈다.

“관내 초등학교 졸업식 시상품으로 기증한 앨범 등은 외상으로 내놓고 나중에 후원금으로 메웠습니다.”

이 의원은 대형 법무법인(나라종합법률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변호사.

“아내(이화여대 의대 교수) 수입은 딸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로 들어갑니다. 의사 변호사 부부가 쩔쩔매고 살아야 하나 푸념도 했습니다.”

한 푼이 아쉬울 때 실수도 했다. “후원금을 세비와 함께 소득에 묶어 신고했습니다. 후원금은 세금 공제 대상인데…. 추산해 보니 그 해 연말정산에서 1000만원 가까이 세금을 더 낸 셈이었습니다.”

지구당의 살림살이는 이듬해부터 나아졌고 적자도 면하게 됐다. “첫 해 후원금이 7000만원으로 최하위권이라는 내용이 신문에 나자 경기고 동기들이 단번에 첫 해 후원금 총액만큼 모아 주더군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으로 활동하며 접하게 된 벤처기업들도 후원자가 됐다. 이들의 후원금에는 ‘대가성’이 있지 않을까.

“특정 사업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돈을 받았다면 불법행위입니다. 하지만 공청회 등에서 제 모습을 보고 후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준다면 그렇지 않겠죠. 이들의 후원금은 각각 100만원 안팎입니다.”

현재 이 의원의 한 해 후원금 규모는 총 2억2000만∼2억3000만원.

“국회의원이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선거 상시 준비 체제’인 것이 문제입니다. 지역구의 단체들이 각종 행사에 지원을 요구해 옵니다. 이 때 ‘선거법을 지킵니다’라고 하면 ‘괘씸죄’에 걸리고…. 정치 활동은 자체가 다 돈입니다. 따라서 투명하게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27일 한나라당 양천갑 지구당 사무실에서 원 의원을 만났다. 원 의원은 4월부터 후원금을 포함한 수입과 지역구 활동비 등 지출을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www.happydragon.or.kr)에 공개하고 있다.

“돈이 없으면 정치를 못 하느냐”고 묻자 원 의원은 “불가능합니다. 돈이 없으면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고 답했다.

원 의원은 지구당 운영비와 의원활동비를 합해 한 달 평균 약 3000만원을 쓴다. 월 수입도 후원금과 세비를 합쳐 그 정도 된다. 그는 자신이 받는 후원금이 전체 의원 중 120위권이라고 설명했다. 원 의원은 “대권을 꿈꾸는 중진 정도면 1년에 10억원은 족히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선거 때 5억∼6억원을 썼고 이때 진 빚이 4억원이라고 말했다. 사용 명세를 밝히기 어려운 돈은 없었을까.

“없다고 할 수 없겠죠. 지구당을 처음 맡았을 때 옛 조직을 정리하면서 피치 못하게 쓴 돈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정리할 때 술 한 잔 사면서 섭섭함도 풀어줘야 하고, 10만원 20만원씩 준 일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머리를 긁적인다)

월 개인용돈은 약 300만원. 정신과 개업의인 아내에게서 용돈을 받는다.

원 의원은 지역구 유권자들이 비교적 고학력층이어서 ‘돈이 표로 연결되는 경향’이 크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원 의원은 경제력이 있는 후원자들을 찾아가 사정한다고 말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후원자들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어떤 국회의원이건 검은 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교 동문회, 과거 그가 일하던 법률사무소, 제주도민회(원 의원은 제주 출신) 등이 후원자들이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정치인에게 돈을 주는 후원자가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변호사 시절 과거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에게 몇 백만원씩 쥐어 준 적이 있다”고 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