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을 계속 금지할 것인가, 합법화할 것인가.” 미국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내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다. 동성결혼은 동성애 관련 쟁점들 가운데 마지막 남은 최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성간 성관계마저 사생활의 영역으로 인정해 사실상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논란의 계기=미국 사회에서 동성결혼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항소법원이 6월 10일 동성결혼 금지를 위헌으로 판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캐나다에서는 현재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가 동성부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연말까지 입법절차를 통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세 번째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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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캐나다에서의 혼인신고를 법적으로 인정해왔으나 캐나다 일부 주가 동성결혼을 인정함으로써 이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법체계와 괴리가 생겼다.
게다가 6월 26일 미 연방 대법원이 동성간 성관계를 금지한 이른바 ‘안티-소도미법(남색 금지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동성결혼 문제가 최대 관심사로 등장하게 됐다. 대법원은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 대법원은 1986년 “동성애자들의 성행위에는 어떤 헌법적 권리도 없다”고 판결했으나 17년 만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미국 여론과 현실=동성결혼과 동성애에 관한 미국인들의 입장은 진보와 보수로 갈려 있기도 하지만 계층과 연령, 대도시와 농촌 및 소도시, 그리고 거주 지역에 따라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동성애에 관한 미국인들의 생각은 지난 20여년 동안 급격하게 변해왔다.
동성결혼에 대해 미국 CBS와 뉴욕 타임스가 7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 55%, 찬성 45%로 나타났다.
1996년 조사에서 반대 65%, 찬성 27%였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는 백인 신교 정통파(83%)와 흑인(64%)에서 특히 많았다.
또 동성결혼 부부에게도 양성 부부에게 부여하는 법적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반대한다는 사람이 57%로 2000년 이 질문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동성결혼과 달리 동성애 관계의 합법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이미 89년부터 찬성이 반대를 앞질렀다. 5월 초 USA투데이가 CNN, 갤럽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60%까지 올라갔다. 반대는 35%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달 25∼27일 조사에서는 찬성 49%, 반대 48%로 격차가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최근 몇 달간 동성결혼과 동성애 문제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찬성이 줄고 반대가 늘어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지고 TV 오락프로그램 등에 동성애자들의 등장이 두드러지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우려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197개 기업이 사내 동성 파트너들에게 남녀 부부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과 고용상의 혜택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몬트주가 유일하게 2000년 7월부터 동성부부에게도 ‘시빌 유니언법’에 따라 주에서 인정하는 법적 보호와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부부는 사회보장 혜택과 같은 연방법상의 혜택은 받을 수 없다.
▽동성결혼 합법화 전망=연방 대법원의 ‘안티-소도미법’ 위헌 결정 이후 동성결혼 합법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보수단체와 종교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어 합법화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여개 종교 방송과 기독교 정치단체들은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규정하는 헌법 수정안 제정을 추진하는 한편 주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동성결혼 금지법을 제정하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동성결혼 금지법을 시행 중인 주는 헌법 수정을 위해 비준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인 전체 50개 주의 4분의 3 정도 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동성애자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결혼은 남녀간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엄격한 정의를 법률화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나는 우리 사회가 각 개인을 존중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동성애자들을 배척하지 말 것을 촉구해 선거를 의식해 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동성결혼 문제는 내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선에 출마할 후보들은 여론을 의식해 대단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당 후보 9명 중 7명은 동성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하지만 동성 부부에게도 법적 보호를 해주는 ‘시빌 유니언’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단 동성결혼 문제는 7쌍의 동성 부부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심리를 이미 마치고 발표만 남겨놓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의 동성결혼 인정 여부에 관한 판결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