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현정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벌’에 전시된 만화 작가 권가야의 작품 ‘남자이야기’를 보고 있다. 이종승기자
가수 김현정(25)은 숨은 ‘만화 마니아’이다.
김현정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벌’전에서 평소 팬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오랜 만화 사랑을 드러냈다.
김현정의 만화 사랑은 초등학교 시절 ‘드래곤 볼’(도리야마 아키라) ‘아톰’(데즈카 오사무)에서 시작했다. 그는 일본 소년 만화에서 출발해 황미나 원수연의 한국 순정 만화를 섭렵하고, 아트 슈피겔만의 ‘쥐’ 등 유럽 만화까지 좋아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만화를 좋아한다고 딱히 말할 수 없을만큼 가리지 않아요. 뭐든지 다 봐요. 그림만 너무 형편없지 않으면.” (웃음)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릴레이 만화도 그렸다는 그는 2001년 12월 만화 스토리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격주간 만화잡지 ‘케이크’에 가수 지망생의 성공기를 그린 ‘T.R.Y.’(시공사)를 만화가 박무직과 공동작업으로 연재했고 최근 단행본으로도 발간했다.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벌’의 하나로 일민미술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만화의 시선과 호흡’전은 올해 초 프랑스 앙굴렘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작품들의 앙코르 전시. 김현정은 이곳에 전시된 최호철의 원화를 보자마자 액자를 가리키며 “이 작품 혹시 구입할 수 없냐”며 좋아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회화풍 그림이 지닌 색감과 분위기가 세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병준의 ‘프린세스 안나’에 나오는 인물들의 퀭한 눈망울을 보고 “일본 만화같은 느낌을 주지만 펜터치에서 나오는 독특한 질감은 독일 만화와 닮았다”고 평했다.
함께 전시된 양영순의 ‘냉장고’는 실험 성짙은 작품이다. 냉장고 속에 소녀를 보관한다는 내용인데 마지막 그림을 실제 냉장고에 사람의 모형을 넣는 설치 작품식으로 전시했다. 김현정은 다소 섬뜩해 하더니 “만화가 이런 식으로도 표현이 되는 것을 보면 만화의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김현정은 이애림의 작품 ‘레인보우’에 대해서는 “공을 많이 들였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작품은 화난 듯 기쁜 듯, 묘한 표정의 인물과 천연색 컬러링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함께 열리고 있는 ‘한국 만화의 호흡’전은 일제시대 신문 만평부터 인터넷 만화까지 한국 만화의 변천사를 시기별로 보여준다. 김현정은 50년대 정치 선전용 만화나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는 낯설어했으나, 60년대 고우영 길창덕 윤승운 작가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윤승운 작가의 ‘맹꽁이 서당’은 역사 만화지만 여러 차례 재미있게 봤어요. 아! ‘공포의 외인구단’, 이것도 정말 좋아했던 만화예요. 그리고 ‘둘리’는 만화월간지 ‘보물섬’에 연재될 때부터 봤어요. 둘리와 희동이 팬입니다.”
김현정은 80년대 작품쪽으로 옮겨가자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강경옥의 ‘별빛속에’ 등을 모두 한눈에 알아봤다.
“유럽에서는 몇 차례 봤지만 한국에서 만화를 미술관에 전시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만화는 문화산업의 중요한 부분인데 미술관 등에서 더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행사일수록 만화 팬들이 많이 몰려들어와 ‘만화의 힘’을 보여줘야 해요.”
전시는 17일까지(월요일 휴관), 초중고 학생 3000원, 일반 4000원. 02-2020-1620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