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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샤갈, 서울에 '色' 을 펼치다…7일부터 선화랑서

입력 | 2003-08-05 18:06:00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만 있다면 /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 … / 아직 그려지지 않은 / 아직 칠해지지 않은 희망을 품고 /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이젤에 못 박힌다 / 끝난 걸까? 내 그림은 완성된 걸까? / 모든 것이 빛나고 흐르고 넘친다 / 저기에는 검은 색, 여기에는 붉은 색, 파란색을 뿌리고 / 나는 평온해진다.”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1950년대 쓴 ‘그림’이라는 자작시에는 세상을 오로지 색과 캔버스로만 사유하는 한 예술가의 내면이 담겨있다.

샤갈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후안 미로 등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거장들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미술사에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은 특이한 작가다. 이는 그가 평생 온갖 이념과 사조가 각축하는 20세기 한 가운데에 내 던져졌음에도 시대에 휘둘리지 않았던 고집 때문이다.

20세기 회화의 거장 중 한명으로 꼽히는 샤갈은 캔버스 안의 대상들이 우주 유영을 하는 것처럼 그렸다. 100년 가깝게 살면서 굵직한 현대사의 고비를 겪었지만 한번도 어떤 이즘이나 단체에 정박한 적이 없었던 그는 매이지 않았기에 떠돌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말년의 자신을 자화상으로 해서 그린 ‘하늘의 연인과 꽃다발’. 사진제공 선화랑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나 1985년 죽을 때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고향을 떠나 이국(異國)을 떠 돌면서 1, 2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나치의 박해 등 굵직한 현대 세계사의 고난을 겪었지만 한번도 어떤 주의, 주장이나 단체에 정박한 적이 없었다. 유대교인이었지만 종교에 집착했던 적도 없었고 파리, 뉴욕에서 시대를 앞선 예술인들과 교류했지만, 어느 유파에도 가담한 적이 없었다.

이런 부유(浮遊)와 변경(邊境)의 삶은 작품 세계에 그대로 녹아 있다.

우주 유영을 하듯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 다니는 캔버스 안 꽃, 사람, 동물, 집들은 ‘비록 떠나 있지만, 매이지 않는, 그러기에 떠돌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중력이라는 질서가 지배하는 지구의 삶,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유한성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는 몸은 땅에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몽상가였다.

생전에 그를 만났던 러시아 잡지 ‘아폴론’의 파리 특파원이었던 투겐홀프는 “그는 풍속화가인가 하면 공상가이고 이야기꾼인가 하면 철학자이다”라고 말했다. (샤갈·한길아트)

떠 도는 자 샤갈은 “내게는 어떤 국제적 명성보다 러시아 화가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며 평생 고향을 그리워 했지만 정작, 공산주의 체제 구축에 바빴던 고국은 그의 예술을 받아 들일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서 대접을 받았다. 국가수반이나 받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1954년에 마티스가, 1963년에 브라크가, 1973년에 피카소가 잇따라 죽은 이후 찬란했던 아방가르드 시대를 대표하는 20세기 유일한 생존자로 추앙받았다.

무중력 상태는…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모두 무중력 상태다. 원근과 중력이 지배하는 이승의 삶, 유한한 삶에 대한 조롱이자 초월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상징한다. ‘마을의 풍경’.

피카소는 “샤갈이야말로 마티스 이후로 색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작가”라면서 “그만큼 빛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고 칭찬했었다.

이주민으로, 유대인으로, 무시와 경멸도 숱하게 받았지만, 그의 화면에는 분노가 없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의 말처럼 “삶의 즐거움과 성공과 행복한 꿈”이 가득하다.

그의 그림이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양식을 뛰어 넘어 이를 자기 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버무려 전 세계인들에게 서정과 꿈, 순수성과 영적인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샤갈이 천착한 것이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할 지라도 인간의 희로애락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꽃과 동물은…샤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꽃은 희망 사랑 기쁨의 상징이다. 또 어린시절, 전통적 유대마을에서 자란 그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암소를 통해 조국과 어머니를, 수탉을 통해 남성이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상징했다. ‘파리하늘의 꽃다발’.

연인은…그의 그림의 단골 주인공인 연인, 신랑신부는 다름아닌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첫 아내 벨라와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샤갈은 벨라가 죽은 이후 각각 두 명의 여인과 사실혼과 결혼 관계에 있었다. ‘꽃다발과 신랑신부’.


서울 인사동 선화랑이 7일∼9월30일까지 여는 샤갈 전에는 ‘마을의 신랑신부’(1969), ‘흰색 꽃다발 속의 연인’(1980) 등 작품 20점이 대거 선보인다. 주로 말기 작들에 집중되어 있고 주제도 신부나 연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에 한정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국제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작품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이번 전시는 17년 전, 미국 오페라 극장에서 만난 샤갈 그림에 반해 언젠가 국내 전시를 성사시키리라 맘 먹었다는 선화랑 김창실 사장의 열정과 집념의 결실이기도 하다. 김사장은 새로 화랑을 이전 개관하면서 샤갈 그림들을 묶어 전시 투어를 기획하는 뉴욕 메리디안 파인아트 센터 측의 전시장 규모와 보안 시설 점검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이번 행사를 성사시켰다. 입장료 8000원. 02-734-0458.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