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선희씨가 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바닥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김미옥기자
1984년 7월 강원 춘천시 남산면 남이섬에서 열린 강변가요제. 약간 촌스러운 퍼머 스타일의 대학생 이선희씨는 ‘J에게’라는 노래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다.
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이씨를 만났을 때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어요?”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불혹(不惑)에 가까운 이씨는 아직 앳된 모습이었다.
“젊은 동네에 자주 와서 그런가? 여긴 젊은 문화가 막 살아서 꿈틀거리는 곳이에요.”
“그들이 보여주는 ‘어설픔’이 저를 편하게 해요.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죠.”
주말에 마로니에공원에서는 기독교음악(CCM) 공연이 많이 열린다.
그는 “어릴 때 CCM 공연을 보면서 하느님은 잘 몰라도 기타 치는 잘생긴 오빠 보러 교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요즘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요?”라고 물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댄스 실력을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고 흔히 ‘코스프레’라 부르는 ‘코스튬 플레이’도 활발하다. 코스튬 플레이란 만화나 게임, 영화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똑같이 분장하고 의상을 갖춰 입는 청소년 놀이. 주말 마로니에공원에서 일본만화 주인공 ‘세일러 문’이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와 함께 어슬렁거리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이곳은 예전에 비행 청소년이 모이는 곳으로 여겨졌죠. 지금은 건전한 청소년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대학로에는 그가 경영하는 극장도 있다. 이은미 김경호 등 실력 있는 가수를 배출한 전통의 ‘라이브 극장’이 재정 압박 때문에 연극 쪽으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 10월 무리해서 맡았다.
이 극장에서는 실력 있는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가 항상 열린다. 8일부터 그도 공연할 예정이다.
노래 잘하는 가수의 대명사 같은 존재인 그는 철저하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가수들로 넘쳐나는 TV 때문에 사라져가는 라이브 문화를 아쉬워했다.
“가수가 꼭 완벽한 가창력을 지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필(feel)’이 더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라이브 공연은 기본이죠. 음반을 5개쯤 내고도 라이브 한 번 안한 가수들도 있어요.”
그가 대학로를 사랑하는 이유는 마로니에공원이든 라이브 극장이든 아직 대학로에는 ‘라이브’가 있기 때문이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