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 울고 주식에 웃는 모습은 전 세계 주식 투자자들이 마찬가지다. 채권과 부동산에 비해 투자에 따르는 위험은 크지만 그만큼 짭짤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세계적인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은 자산배분과 분산투자 등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소개한다.》
1980년 이후 20년이 넘게 올랐던 미국증시는 2000년 3월 나스닥종합지수 5,000대를 정점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약세장은 만 3년 뒤인 2003년 3월 지수가 1,200대에 닿을 때까지 계속됐다.
“지수가 4,500 선으로 떨어지자 많은 투자자들이 바닥이 왔다며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3000에서도 2000에서도 ‘바닥’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제이 조·미국 교포)
그러다 지수가 1,200까지 떨어지자 대부분의 투자자가 주식을 사지 않았다. 더 깊은 바닥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약세장의 아픈 사연들=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의 국제투자책임자 스테판 도버는 “엔론사 등의 종업원들은 기업연금으로 자사주를 사거나 기술주에 집중 투자를 했다가 회사가 망하고 기술주가 폭락하면서 낭패를 보았다”며 “분산투자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증시가 바닥을 찍고 오르기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2003년 7월 현재 미국에는 잔인한 약세장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워 있었다.
서점에는 ‘당신의 애널리스트를 해고하라’ ‘약세장 살아남기 가이드’ ‘거대한 뮤추얼펀드의 덫’ 등 약세장을 주제로 한 투자지침서들이 즐비했다.
잘나가는 여성 파이낸셜플래너(CFP)인 수즈 오먼은 라디오와 TV프로그램, 각종 저서를 통해 약세장에 멍든 투자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기에 바빴다.
그가 2003년 저서에서 소개한 TV카메라 기자 샘의 이야기는 한 순진한 투자자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샘은 주식투자를 전혀 몰랐다. 그러나 같은 회사의 친구들이 1998년부터 시스코 회사에 투자해 큰돈을 버는 것을 보고 덩달아 뛰어들었다.
그는 아끼던 90만달러짜리 집을 저당잡혀 만든 50만달러를 시스코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시스코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잘 몰랐다.
샘은 2000년 초 주당 54달러에 주식 9000주를 샀다. 넉 달 뒤 주가가 70달러로 오르자 9000주를 더 샀다. 이른바 물타기를 한 것.
그러다 버블의 끝이 왔다. 2000년 3월 81달러를 정점으로 주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샘은 81달러가 되면 팔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 가격은 다시 오지 않았다. 2000년 12월 주가는 34달러로 떨어졌다. 샘은 집과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파이낸셜플래너인 제이 조씨는 “약세장 3년 동안 전문가도 투자자도 자산배분과 분산투자, 적립식 투자 등 투자의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길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물론 모든 미국 주식투자자가 샘처럼 버블에 희생된 것은 아니다. 자산배분과 장기 분산투자의 원칙을 잘 지킨 미국인들에게 3년은 단기 변동에 불과했기 때문.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는 1930∼2001년 미국 증시를 대상으로 재미있는 계산을 했다. 10년마다 성향이 다른 가공의 투자자 5명이 어떤 수익을 냈는지 따져 본 것.
투자자는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에 따라 ‘공격적 성장형’ ‘성장형’ ‘적당한 성장형’ ‘보수적 성장형’ ‘안정형’ 등.
수익률은 시대마다 달랐다. 대공황 시절인 1930년대와 석유파동이 온 70년대, IT버블이 무너진 2000∼2001년은 안정형 투자자의 수익률이 높았다. 나머지 시기에는 주식에 100%를 투자한 공격적 성장형 투자자의 수익률이 월등히 높았다.
결론적으로 1930년 같은 1000달러를 투자한 결과 2001년 12월 31일까지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공격형 투자자였다. 그만큼 미국 증시가 꾸준히 올라주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미국 주식투자자는?=이런 역사 때문에 최근 3년 동안의 증시 약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주식에 갖는 애정은 크다.
미국투신협회(ICI)와 증권업협회(SI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02년 1월 현재 미국의 5270만가구, 8430만명의 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하거나 주식형 뮤추얼펀드에 가입 해 있다. 99년에 비해 각각 7.1%씩 늘어난 것.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는 99년 48.2%에서 2002년에는 49.5%로 늘어났다. 가구의 절반가량이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
IC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2년 현재 미국의 평균적인 주식투자자는 결혼한 직장인 남자이면서 40대 후반에 연봉은 6만달러 정도. 투자자의 87%는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한다고 답했다.
투자자의 96%는 스스로 장기투자자라며 단기적인 증시의 부침은 이겨낼 수 있다고 답했다. 86%는 ‘사서 보유하는(buy-and-hold)’ 전략을 따르고 있고 95%는 언젠가는 주식 가격이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1930년 1000달러를 투자한 유형별 투자가의 2001년 말 현재 투자성과유형자산배분(%)최종 자산(달러)누적 수익률(%)연 평균 수익률(%)공격적 성장형주식1001,130,119112,911.910.3성장주식80 채권 20728,42272,742.29.6적당한 성장형주식60 채권40419,85141,885.18.8보수적 성장형주식40 채권40 현금 20179,41317,841.37.5안정주식20 현금20 채권 6083,8068,280.66.3자료: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워싱턴=신석호기자 kyle@donga.com
▼美에퀴터블사의 자산분배 지침서 ▼
미국인은 사소한 제품이나 작업에도 설명서나 지침서를 꼭 만든다. 이 문서들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돼 한국인이 영어공부를 할 때 가장 좋은 교재라는 말도 있다.
보험 전문 자산운용사인 에퀴터블이 만든 ‘자산배분지침서’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내용도 많지만 자세하고 체계적인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미국인들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어떤 투자 성향일까.
▽나의 투자 성향 알아보기=첫 번째 질문은 얼마나 오래 투자할지를 묻는다. 투자 기간은 적립 기간에 분배받는 기간의 절반을 더한 기간으로 계산한다. 5년 동안 모아서 10년 동안 나눠 지급받는 투자의 경우 투자 기간은 5년(5년+10년×1/2)이다.
두 번째는 원하는 기대 수익과 참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질문. 투자에 따르는 기대 수익이 클수록 위험도 크다.
세 번째는 물가상승과 위험에 관한 질문. 물가가 오르면 화폐의 구매력이 낮아진다. 구매력이 떨어지지 않는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네 번째 질문은 10만달러를 투자했을 때 감내할 수 있는 손실의 수준을 묻는다. A의 경우 1년 뒤 자산이 10만6000달러로 수익률이 6.00%에 불과하지만 가능 손실률도 12.5%로 낮다. 아래로 갈수록 수익률도 높고 손실률도 높다.
마지막 질문은 장기투자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내용.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도 늘어나지만 그만큼 기대 수익도 높아진다.
▽내 점수로 자산 배분하기=질문마다 답을 한 뒤 답에 해당하는 점수를 모두 더한다. 모두 마지막 문항을 고른 사람의 답은 100점이다.
점수에 따라 보수형(35점 이하) 보수온건형(36.5∼54점) 온건형(54.5∼72점) 온건공격형(72.5∼90) 공격형(90.5∼100)으로 투자 성향이 갈린다.
미국 국내에만 투자하는 경우 유형별로 적합한 모델 포트폴리오는 다음과 같다.
①보수형=채권(65%) 하이일드채권(20%) 대형주 중소형주 머니마켓펀드(MMF) 각각 5%
②보수온건형=채권(50%) 대형주(20%) 중소형주(15%) 하이일드채권(10%) MMF(5%)
③온건형=채권(35%) 대형주(30%) 중소형주(20%) 하이일드채권(10%) MMF(5%)
④온건공격형=대형주(45%) 중소형주 채권(각각 20%) 하이일드채권(10%) MMF(5%)
⑤공격형=대형주(60%) 중소형주(20%) 채권(10%) 하이일드 MMF(각각 5%)
에퀴터블 그룹에서 일하는 파이낸셜 플래너 제이 조씨는 “고객이 오면 우선 위험 성향을 체크하고 성향과 다른 투자 행태를 바로잡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객의 성향은 기록이 되고 만일 성향과 다른 투자를 권했을 때에는 본사 차원에서 경고가 내려진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