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호전’과 ‘고용악화’가 뉴욕증시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생산 주문 등 각종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는 날은 증시가 힘을 얻지만 이런 추세와 달리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고용통계가 나오면 증시는 위축된다.
5일도 그런 날이었다. 서비스업의 회복세에 관한 통계로 투자자들이 고무됐던 것은 잠깐이었다. 시카고에서 날아온 해고통계는 한여름 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시카고에 있는 취업알선기관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가 발표한 통계로는 7월 중 미국 기업들의 해고는 총 8만5117명으로 6월에 비해 43% 늘어났다. 6월의 해고가 31개월 만에 최저치라고 해서 ‘고용시장도 바야흐로 회복세로 돌아서는가 보다’라는 희망을 주었는데 약효가 얼마 가지 못했다.
챌린저측은 “여름철엔 경영자가 휴가를 가니까 해고도 주춤한 게 보통인데 이번엔 영 다르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업들이 내년 계획을 짜는 노동절(올해는 9월 1일) 직후 해고계획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이고 있다.
고용회복은 경기회복에 뒤이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요즘 미국경제는 약 60년 만에 장기간의 ‘고용 없는 회복’이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고용 없는’ 또는 ‘고용이 줄어드는’ 회복은 △잠재성장보다 약한 성장세 △치솟는 의료보장비용 △생산성 향상 등에 따른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고용 없는 회복’의 문제는 소비를 위축되게 한다는 점.
증시에선 이것 말고도 채권수익률이 급락(실세금리 상승)하는 바람에 주택, 설비투자, 소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란 우려가 번져 주가 하락세를 재촉했다. 미 재무부는 이날 3년물 채권 240억달러어치를 발행했으나 금리가 예상치 2.360%를 웃돈 2.422%에 거래됐던 것. 이 바람에 10년물의 수익률은 4일 4.29%에서 5일엔 4.40%로 치솟고 말았다. 6일과 7일 발행예정인 5년물, 10년물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예상이다.
장 마감 후엔 세계최대의 네트워킹 장비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고 조심스러운 낙관 전망을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그 정도로는 실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경기회복에 자신이 없다보니 분위기를 많이 타는 시장이 됐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