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예카테리나 궁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46명의 각국 정상들이 모였다. ‘세계의 8대 기적’으로 불리는 호박(琥珀)방의 문을 62년 만에 다시 열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약탈된 후 아직까지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호박방은 24년 동안의 작업 끝에 ‘오리지널’보다 더 화려하게 복원됐다. 혁명과 전쟁으로 훼손됐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화유산들이 올해 도시 건설 300주년을 맞아 차례로 복원되고 있다. 호박방 외에도 1917년 볼셰비키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됐던 콘스탄티노프 궁전도 ‘정상외교’의 무대로 부활했다. 세계 3대 미술관인 에르미타주(옛 겨울궁전)의 시설도 최대 규모와 최고의 소장품 수준에 걸맞게 전면 개·보수됐다. 유네스코가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 유적과 관련 유물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래 계속돼온 러시아와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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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방이 문을 열고 6주 동안 벌써 20여만명이 다녀갔습니다.”
지난달 18일, 예카테리나 궁전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궁전측은 한꺼번에 많은 관람객이 호박방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복원한 ‘보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출입객은 입구에서 신발 겉으로 일회용 덧신을 신어야 했다. 실내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다.
긴 복도와 다른 방들을 거쳐 호박방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뿜어내는 황금빛이 어지러울 정도로 찬란했다. 온갖 색깔의 호박 조각을 정교하게 가공한 후 큰 판으로 만들어 벽과 천장 전체에 붙인 것이었다. 장식장과 탁자 등 가구와 공예품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방 안 모든 것이 호박으로 장식돼 있었다. 벽에 붙은 큰 거울들이 반대편 벽에서 나오는 빛을 서로 반사하며 더욱 현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러시아의 차르가 유럽의 다른 황제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이라며 뽐냈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방의 크기는 30평쯤으로 생각보다 넓지 않았지만 높이는 8m나 됐다.
관람객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잠시 넋을 잃었다가 이내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다음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도 있다.
호박은 나무의 진이 수천년 동안 땅속에서 묵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영토인 쾨니히스베르크(옛 칼리닌그라드)가 세계적인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호박방에 사용된 6t이나 되는 호박은 모두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운반한 것이다. 그중에는 1200kg이나 되는 큰 덩어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 호박이 모두 호박방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공하는 도중 깎여 먼지가 돼 없어지고 결국 20∼30%만 사용됐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 궁전측이 관람객을 제한하는 등 신경을 쓰는 것은 호박의 성질 때문이다. 호박은 많은 사람이 뿜어내는 가스나 40도 안팎의 더위에도 영향을 받을 정도로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호박은 무병장수를 상징하고 ‘사랑의 묘약’으로도 알려져 왔다.
호박방의 탄생과 훼손, 복원은 모두 독일과 관련이 있다. 원래 호박방은 프로이센(옛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황제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에게 선물한 것이다. 키 크고 건장한 러시아 근위대를 탐내던 빌헬름 1세는 표트르 대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호박방을 선물했다. 호화로운 선물에 만족한 표트르 대제는 즉각 거구의 러시아 군인 55명을 답례로 보내줬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독일군은 예카테리나 궁전을 점령한 후 호박방 전체를 자르고 뜯어서 약탈해 갔다. 독일군은 처음에는 호박방을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겼다가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빼돌리려 했고 이 과정에서 호박방은 사라졌다.
전후에도 소련은 전문가를 동원해 전 세계에 걸쳐 호박방의 행방을 추적했으나 약탈 도중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서랍장과 모자이크 판 등 일부분만을 되찾은 것이 전부였다.
폭격으로 방 전체가 부서졌다고 결론 내린 소련 당국은 1979년 호박방 되찾기를 포기하는 대신 복원을 결정했다. 남은 사진과 자료를 토대로 옛 모습을 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낡은 사진을 정밀 분석해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나가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소련 붕괴 후 재정난까지 겹쳤다. 그러다가 독일의 가스회사인 루르가스가 350만달러(약 41억4900만원)의 자금을 지원해 비로소 복원 사업이 마무리됐다.
이런 오랜 사연 때문에 푸틴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나란히 호박방의 문을 연 것이다.
새로 복원한 호박방의 가치는 적어도 2억달러(약 237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호박방의 복원은 값비싼 보물을 되찾은 것 외에 ‘불행했던 과거와의 화해’라는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전문가 30명 밑그림만 11년 걸려”▼
“대충 했으면 1년이면 끝났을 일이 24년이나 걸렸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 박물관의 빅토르 로조프 부관장(사진)은 “호박방 복원 계획을 세우면서 아예 작업 예상기간을 정해 두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시간에 쫓기다가 작은 실수라도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300주년을 맞는 올해 호박방 복원이 완성된 것도 우연일 뿐 일부러 시간에 맞춰 서두른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30여명의 전문가가 사진을 토대로 원래 호박방의 모습을 복원해 밑그림을 만들어내는 데만 11년이 걸렸다.
특히 옛날 사진은 흑백이어서 색조를 추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다가 1918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컬러사진 1장을 찾아내면서 작업이 쉬워졌다. 또 독일군이 약탈하면서 떨어뜨리고 간 조각과 독일 등에서 찾아낸 몇몇 부분도 전체적인 호박방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단서가 됐다.
호박 조각 하나하나를 가공하면서도 10번 이상 미리 시도해 본 후에야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니 방 하나 새로 만드는 데 1200만달러(약 144억원)가 든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독일기업 등 국제사회의 재정지원은 받았지만 복원작업은 러시아 단독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호박 가공기술에서 러시아를 따라갈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호박으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호박방 복원 같은 대규모 사업에 참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로조프 부관장은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들이 일생을 걸고 되살려 낸 것이 바로 이 호박방”이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돼 절반이나 파괴됐던 예카테리나궁전의 다른 부분도 이번에 대부분 복원됐다. 이 작업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이 재정지원을 했고 덴마크와 폴란드 복원전문회사들이 참여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상트페테르부르크는…다양한 건축-百夜 유명▼
러시아 제2의 도시이며 옛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북방의 늪지대를 돌로 메워 인공 계획도시를 건설하는 대역사(大役事) 끝에 탄생해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10월 혁명, 제2차 세계대전 등을 목격한 ‘세계사의 증인’이자 바로크양식에서부터 신고전주의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도시다.
100개 이상의 섬과 365개의 다리로 연결된 물의 도시로 ‘북국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하고 여름에는 밤이 없는 백야의 도시로 유명하다.
옛 소련 정권이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고 혁명과 전쟁, 소련 붕괴 등 계속되는 격변 속에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되고 옛 모습을 잃었으나 올해 정도(定都) 300주년을 즈음해 러시아 정부가 4년 동안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시를 새로 단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