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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세계화’ 한 배 탄 韓中日

입력 | 2003-08-07 18:22:00


최근 일본 아와지(淡路) 섬에서 아시아태평양포럼이 열렸다. 주제발표자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에서 회사 전용기로 왔다. 약진하는 한국의 상징인 삼성그룹 경영책임자의 말을 듣고자 간사이(關西) 지역의 실업계 인사들이 몰려 회의장은 만원이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반도체와 휴대전화 덕분에 4조엔(약 40조원)을 넘었으며 순이익은 7000억엔(약 7조원)을 웃돌았다.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기업이다.

하지만 그런 삼성전자도 1997, 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에는 거액의 부채가 이익을 잠식해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윤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혁신’을 철저히 추진했다. 257개 사업을 정리했으며 국내 인원의 33%, 해외 인원의 36%를 감원했다. 윤 부회장은 혁신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선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과거 한때 성공했던 조직일수록 기득권을 완고하게 지키려 한다. 혁신은 점(點), 선(線), 면(面)으로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종업원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 목표와 비전을 제시한 뒤 우수한 관리자에게 권한을 대폭 넘긴다. 결국은 위기의식을 갖느냐, 그러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점에서 “도요타자동차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이사 1000명 중 3분의 2가 40대 이하다. 1700명의 박사와 350명의 경영학석사(MBA)가 있다. 대부분 구미에서 자격을 취득했다. 삼성에 있어서 혁신이란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 즉 ‘삼성 글로벌리제이션’이었다.

이렇게 말한 뒤 윤 부회장은 “산요의 협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은 없었다”며 이번 포럼을 주관한 이우에 사토시(井植敏) 산요전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게 감사를 표했다.

윤 부회장은 30년쯤 전 군마(郡馬)현 산요전기 공장에서 1년간 제조기술자로 연수를 받았다. 일종의 기술이전이었다. 이우에 회장도 그 무렵 서울에서 이뤄진 산요와 삼성 합작사업의 일본책임자로 매주 한국 출장을 다녔다. 합작사업은 이후 없어졌지만 양사는 지난해 다시 연료전지와 차세대기술의 공동개발에 대해 제휴했다.

꽤 오래전 이우에 회장을 만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의 식기는 도자기라 떨어지면 깨지고 만다. 그래서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은 금속제라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을 소중히 하려는 마음이 부족하다. 일본은 훌륭한 재산을 갖고 있다.”

이우에 회장은 일본의 오랜 제조업 전통이 중요함을 새롭게 느꼈다고 한다. 산요도 삼성도 세계시장에서 격렬한 경쟁을 벌이며 각자의 ‘재산’, 결국 가치를 재발견해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각자의 강한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양사의 제휴를 가져왔다.

이우에 회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가전제품을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에서도 중국의 하이얼(海爾), 한국의 삼성과 제휴해 세계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산요전기는 일본 시장에서 보다 큰 라이벌 회사들과 결전을 벌이는 데도 중국과 한국의 두 회사 힘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글로벌리제이션은 남의 장점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이다. 내 장점은 결국 개성이기도 하고 다양성이기도 하다. 이우에 회장은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에 개성이 없는 사람은 외톨이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산요, 하이얼, 삼성에 의한 한중일 글로벌리제이션은 각각의 경쟁력을 높이고, 개성을 살려 아시아의 지역통합을 가져온다. 이런 기업간의 새로운 관계는 국가간에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아시아태평양의 국가간 관계는 종적 형태가 아니라 횡적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선두 일본을 일제히 뒤쫓는 기러기 떼 같은 형국이란 생각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일본의 혁신에 있어서 아시아 각국이 이처럼 열쇠를 쥐게 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아시아와 함께, 아시아로부터 배운다는, 재생을 위한 개척정신이 일본 사회에 퍼지고 있다. 이것이 메이지(明治)시대나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