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92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주석궁에서 만난 김일성 주석은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연보호를 위해 삭도(케이블카)도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혀 개발되지 않은 금강산을 오르며 나는 그 자연미에 탄복했었다. 구룡폭포를 왕래하는 길은 북한 주민이 워낙 뜸해 남측에서 온 일행의 독무대이다시피 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우리 일행만이 즐기기에는 너무나 절묘했다. 금강산을 떠나는 아쉬움에 북측의 황영준 공훈예술가가 화폭에 담은 ‘가을의 금강’(1991)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김 주석은 금강산보다 묘향산이 더 아름다우니 다음에 꼭 다시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필생의 사업 ‘금강산관광’ 위기 ▼
북측의 관광자원을 현대아산이 개발해 남한의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금강산 청정해역에 해수욕장이 개방되어 해금강호텔 주변에서 바다낚시를 할 수 있고, 금강산을 바라보며 노천탕을 즐기노라면 자연과 하나 됨을 만끽할 수 있다. 한결 부드러워진 안내원의 미소와 친절은 동포의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1998년 11월 이후 지난달까지 4년8개월 동안 1094항차에 총 52만9152명이 금강산을 찾았다. 현대아산은 연평균 10만명(여행경비 1인당 54만원 기준)을 손익분기점으로 여기지만 월평균 30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자본금 잠식은 물론 매달 적지 않은 적자를 보고 있다.
현대아산은 30년간 금강산을 독점 사용하는 대가로 6년3개월간 총 9억4200만달러(약 1조2240억원)를 북측에 지불키로 하고 초기 6개월 동안은 매월 2500만달러씩 지불했다. 적자가 계속되자 현대아산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는 2001년 6월 관광대가를 해로관광은 1인당 100달러, 육로관광은 50달러로 사업이 활성화될 때까지 합리적으로 지불키로 합의했다.
그나마 어렵게 명맥을 이어 오던 금강산관광이 잠정 중단되었다. 현대 금강호가 첫 출항한 이후 세 번째다. 앞서는 민영미씨 억류사건(1999년), 사스(SARS·2003년 4월)로 인한 외부환경 요인으로 중단됐지만 이번에는 금강산 사업 자체가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경협의 상징성을 갖기에 정몽헌 회장이 더욱 애착을 가졌던 사업이다. 정주영-몽헌 부자는 기업가적인 이윤 추구보다는 고향을 일군다는 애절한 소망을 담아 필생의 사업을 펼쳐 왔다.
현대아산은 외자유치를 통해 그동안 추진해 온 개성공단사업, 금강산관광사업,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사업 등 다양한 남북경협 사업을 활성화하고자 한다. 개성특구 총 2000만평 중 100만평의 착공식이 이뤄졌다. 개성공업지구는 남측의 축적된 기술과 자본, 북측의 저렴한 임금과 우수한 노동력이 결합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수출공단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고려 500년 도읍지인 개성에는 선죽교, 왕건왕릉, 박연폭포 등 풍부한 문화유적지가 산적해 있다. 이를 발굴하고 관광지로 개발하면 외화벌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북측의 협조 없이는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경제논리에 따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투자환경이 이뤄질 수 있도록 남북경협이 제도화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경협 제도화 계기되길 ▼
금강산관광과 개성특구 조성을 위해서는 철도신호, 통신, 전력계통 등을 재설계하고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어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제반 정지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북측은 경제논리를 무시한 남북경협이 남측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불행한 사태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측도 정치논리로 매도한 남북경협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결과를 낳고 있는지 되새겨야 한다.
성공적인 남북경협은 고인의 유지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중심에 자리한 지정학적 이점을 살리면 앞으로 우리 민족에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 줄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상가에서 만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대북사업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날 엄청난 흑자를 가져다 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정몽헌 회장의 명복을 빈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yhah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