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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박동곤/'너무 작아서…너무 커서' 못보는것

입력 | 2003-08-08 18:30:00


올여름 장마철에도 어김없이 많은 비가 내렸다. 산악지역에 내린 비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다가 댐으로 막힌 인공 호수나 저수지에 갇히기도 하고, 논에 고여 있다가 지하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고인 물을 끌어다 쓰고, 그 대신 더러운 물로 다시 흘려보낸다. 그러면 낮은 곳으로 향하던 물은 점점 더러워져 마지막에는 못쓰는 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뜨거운 태양이 바다를 쪼이면 증발된 물은 더러운 것들을 바다에 떨쳐 놓고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바람에 날린 구름은 산악지역에 다시 비를 뿌리고, 이 비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여행을 반복한다. 이렇게 물이 하나의 거대한 사이클을 도는 주기는 평균 일주일 정도로, 우리가 물을 쓰고 버리면 일주일 후 다시 깨끗한 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다에는 더러운 찌꺼기가 계속 쌓이게 된다. 다시 말해 바다는 우리 지구의 ‘거대한 정화조’에 해당한다. 이같이 일주일 주기로 물을 재생하는 메커니즘은 그 규모가 너무나 커서 일반인의 눈에는 안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바다에 계속 쌓이는 찌꺼기들은 어떻게 될까. 바다가 아무리 넓더라도 만약 누군가가 이 더러운 것들을 계속 치워주지 않는다면 얼마 되지 않아 정화조는 꽉 차 버리고 말 것이다. 햇빛이 투과하는 얕은 바다를 ‘채광수역’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이곳에는 ‘미생물’이라고 하는 수많은 작은 청소부들이 있어서 태양빛을 수고비로 받으며 이 더러운 찌꺼기들을 치워주고 있다. 바로 지구의 ‘폐수처리장’인 셈이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바다는 그야말로 역한 냄새가 나는 시궁창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햇빛이 바닷물 속으로 그리 깊이 투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구 전체를 볼 때 표면적의 70%가 바다지만, 채광수역은 해안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강 하구와 접한 수역으로, 개펄이 그 대표적인 영역이다. 특히 우리나라 서해안은 대륙붕을 끼고 수심이 완만하기 때문에 정화조로서는 안성맞춤인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더러운 물들이 서해안으로 흘러들어가는데도 모두 정화 처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인간의 유전자 서열을 밝혀 유명해진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미세한 필터에 걸러진 수중 부유물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지의 생명체가 물 속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금방 알아차리기는 힘들지만,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보고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 간접적인 바로미터가 바로 게, 고둥, 모시조개 등의 바다동물들이다. 조개들이 죽어 널브러진 채광수역에서는 눈에 안 보이는 이 청소부들도 모두 죽어 없어졌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바다의 정화능력이 상실된 것이다.

세계 5대 개펄의 하나인 새만금을 막고, 대신 하천 중상류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여러 개의 폐수처리장을 만든다고 한다. 이미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처리용량을 가진 자연 폐수처리장치를 허물고 인간이 만든 폐수처리장을 대신 건설한다고 하니, 그 계획입안자들의 과학상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혹시 지도에서 ‘지명 찾기’를 해 보았는가. 너무 작아 깨알 같은 지명을 찾는 것도 힘들지만, 너무나 커서 한눈에 안 들어오는 지명 역시 찾는 데 애를 먹곤 한다. 책상 위에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해안의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고는 공짜 땅을 얻었다고 흐뭇해하는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의 공무원들에게는, 너무나 작은 미생물들과 너무나 큰 지구의 물 정화장치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박동곤 숙명여대 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