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후에 받는 국민연금 액수를 줄이고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는 올려 장차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이 확정됐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개편안 산출에 활용된 항목들이 잘못됐다며 반발하고 있어 국민연금 개편을 둘러싼 노-정(勞-政) 갈등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가입자의 평균소득 대비 국민연금 수령액 비율인 소득대체율을 현행 60%에서 2004년부터 55%로 낮추고 2008년부터 다시 50%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개편안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1988년 이후 70%에서 1999년 60%로 줄었고 다시 5년 만에 55%로 낮아진 뒤 4년 후에 50%로 또 떨어지게 됐다.
복지부 개편안은 또 현재 9%(사업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인 보험료율을 2010년부터 5년마다 1.38%포인트씩 올려 2030년 15.9%를 적용하도록 했다.
개편안은 이 밖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잣대인 기준소득의 상한액을 현행 월 360만원에서 월 396만원으로 올렸다. 이에 따라 월소득이 396만원을 넘는 가입자들은 396만원의 9%(현행 기준)만 보험료로 내면 된다.
복지부 개편안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도 나중에 받는 연금액수는 적어지는 젊은 세대에게 특히 불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반발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14일까지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18일 입법예고, 19일 공청회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한 뒤 대통령 승인을 받아 국회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설정한 기간 70년과 출산율을 1.36명으로 잡은 것 등은 비현실적”이라며 “국고지원 확대와 기준소득 상한액 폐지 등 연금제도를 먼저 개혁한 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산정해 2008년부터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개편案 주요내용과 전망▼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재정안정화 방안)은 2047년에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기금의 위기를 막기 위한 고육책인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사례=월소득이 2002년 말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 136만원인 가입자가 20년 뒤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현행 소득대체율(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 연금 60%, 보험료율 9%를 적용하면 보험료는 매달 6만여원(이하 근로자 부담분)을 내고 20년 뒤에 연금은 평균소득의 30%인 월 40만원을 받게 된다.
소득대체율 60%(81만원)는 가입기간 40년을 채운 경우에 적용된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50%로, 보험료율을 15.9%로 하면 보험료는 매달 10만여원으로 늘어나지만 20년 뒤 연금액은 34만원으로 줄어든다. 소득대체율 50%가 적용되는 40년을 가입해도 연금액은 67만원에 불과하다. 그만큼 젊은 세대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 안은 소득대체율 55%를 2004년부터 4년만 적용하기 때문에 연금액은 소득대체율 50%를 계속 적용할 때와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연금액은 가입 연도의 소득대체율이 적용되므로 기존 가입자의 기득권은 보장된다.
한편 복지부 안이 대통령 승인을 거쳐 국회로 넘어가도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또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정위기 강조 엉터리 계산법”…노동계 강력 반발
노동계는 개편안이 2070년까지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 보험료율 등을 산출한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2060∼2070년 10년간에만 적자가 8705조원으로 예상되므로 ‘연금액 감소, 보험료 인상’의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오건호(吳建昊) 정책부장은 “일본이나 영국처럼 재정 추계기간을 60년간으로 해도 충분하다”며 “이렇게 하면 보험료율을 3.1%포인트 정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또 개편안이 전제로 삼은 출산율 1.36명도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오 부장은 “개편안의 출산율로 계산하면 2150년경에는 한국의 인구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모성보호와 보육지원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 경우 예상되는 목표출산율 1.8명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정규 근로자와 영세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국고지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0.75%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율은 4.5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는 것.
노동계는 이 밖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 및 전문화와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는 등 국민연금제도를 먼저 개선한 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새로 산정해 2008년부터 적용하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