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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직장인들 "家業으로"

입력 | 2003-08-10 17:34:00


《올해 1월 재정경제부의 강승모 금융협력과장(41)은 사표를 내고 가업(家業)을 물려받았다.

그의 새 직함은 수산물가공업체 유동골뱅이 사장. 행시 28회인 강 사장은 재경부에서 최연소 과장이 될 만큼 촉망받던 경제관료다. 당시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말리기도 했다.

강 사장은 “공직자의 꿈을 접었지만 후회는 없다”면서 “30∼40년간 유지돼 온 사업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소규모 사업일수록 가족경영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한 뒤 감정평가법인에서 일하던 홍재범씨(34)는 1998년 말 사표를 내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보원집’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보원집은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30년간 영업한 보신탕 전문점.

홍씨는 “회사원으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와 음식점 경영을 견줘본 끝에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회사원들, 가업으로 돌아가다=‘가업’하면 일본이 연상된다. 몇 대를 이어온 우동집을 물려받기 위해 전도유망한 직장을 버렸다는 일본식 가업 잇기는 장인정신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되는 소재.

그러나 한국에서도 부모님이 하던 자영업을 물려받기 위해 번듯한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30, 40대 회사원들이 늘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외환위기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부모들은 음식점 경영 등으로 힘겹게 번 돈을 교육에 투자해 자녀는 화이트칼라가 돼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상시 구조조정이 일반화되고 ‘사오정’(45세 정년의 줄임말)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안정적 생활의 가치가 커졌으며 실리 위주의 사고가 확산된 것.

일본문화 전문가 김지룡(金智龍)씨는 “일본에서도 가업이라고 무조건 물려받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가업을 잇는 선택은 철저히 실리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의 가업승계 전통은 계층 상승이 쉽지 않은 사회시스템과 맞물려 있다는 것.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계층 이동이 어려워져 회사원들에게 겉치레보다 실속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소공동뚝배기’의 2세 경영인인 허영석 사장이 주방에서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물려받아 37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워냈다. 권주훈기자

▽가업의 진화=1997년 말 대기업 계열의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소공동뚝배기’를 물려받은 허영석 사장(37)은 치밀한 준비 끝에 2000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2호점을 냈다. 개업 40년 만의 일. 그는 현재 직접 지분을 갖고 있는 4개 점포를 포함해 수도권 주변에만 37개의 가맹점을 이끄는 프랜차이즈 사업주가 됐다.

허 사장은 “맛의 표준화와 경영합리화를 위해 골몰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올해 4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7월 초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낙지전문점을 열기 위해 한창 인테리어 공사를 벌이고 있는 최문갑씨(35)는 퇴사 전까지 잡지사 사진기자로 9년간 일했다. 그는 아버지가 30년간 경영해온 서울 마포구의 ‘목포낙지’를 잇는 2호점을 8월 말 열 예정. 최씨는 “양념 제조법을 계량화하고 주방장을 육성해 체인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가업이 고학력과 사회경험을 갖춘 2세 경영인들이 참여하면서 규모와 경영시스템을 갖춘 본격적인 사업체로 ‘진화(進化)’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컨설팅업체인 창업e닷컴의 이인호 소장은 “경쟁력이 입증된 가업 승계는 ‘묻지마 창업’에 비해 실패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2세 경영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가업은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