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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내사랑 DMZ'…동요가락에 실린 환경사랑

입력 | 2003-08-11 17:45:00

한국적 전통이 살아있는 ‘내사랑DMZ'는 어른과 어린이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찾아가는 가족 뮤지컬이다. 사진제공 아룽구지기획


‘참깨 들깨 노는데/아주깨는 못 노나/깨밭에서 깨노세/아주깨는 못노나‘.

오태석 연출의 어린이 뮤지컬 ‘내사랑 DMZ'에 나오는 노래 ’참깨 들깨‘는 원래 강원도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동요였지만 요즘 이런 동요를 흥얼거리는 어린이는 찾기 힘들다. 거의 잊혀진 노래가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들의 마음에서 전래동요가 완전히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니다.

‘내사랑 DMZ‘에서 동물 배우들이 이 전래동요를 불러주면 어린이 관객들은 따라한다. 어린이들은, 그리고 함께 온 엄마들도 마치 아기 시절 늘 들었던 자장가처럼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무리 세상이 서구화됐다 해도 3·4조 또는 4·4조의 전통운율이 한국인의 핏속에 숨어 흐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사랑 DMZ'는 ’3·4조 운율‘ 같은 뮤지컬이다. 어린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잊어버릴 수 없는 전래동요를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마술 같은 힘을 갖고 있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친근한 가락과 구수한 대사가 어우러졌다. 조롱말, 여우, 너구리, 원앙이 등 동물 배우들은 황토색 의상으로 관객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친근한 운율의 노래가 전편에 흐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내사랑 DMZ’가 줄거리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소 생뚱맞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DMZ에서 평온하게 살던 동물들이 남북 경의선 철도 재건 사업이 시작되자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 때 죽은 군인들을 되살려내 사람들과 맞선다는 내용. 전쟁과 분단, 통일과 환경 등 어린이 연극으로는 무거워 보이는 소재다. 게다가 남북 화해가 통일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생태계의 보고인 DMZ의 자연에는 해가 된다는 설정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기발한 상상력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동화처럼 아름답게 소화해낸다. 오히려 이 공연이 어렵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른들 뿐일지 모른다. 어린이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2시간 내내 동물들의 재롱에 빠져든다.

연출가 오태석은 “연극은 잘 차려놓은 밥상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준비하는 사람은 정성껏 이것저것 만들어 놓고, 즐기는 사람은 마음에 맞는 반찬만 찾아먹으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처음 만든 어린이극 ‘내사랑 DMZ'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찾아먹으면 되고, 어른은 어른의 몫을 찾으면 그만이다. ’내사랑 DMZ'가 환영받는 이유는 공연을 보고 난 뒤 부모와 어린이가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대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