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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난투극은 모두의 책임이다

입력 | 2003-08-11 17:48:00


그라운드에서 집단 난투극이 빈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졸지에 주말 대구 난투극의 주역이 돼버린 이승엽의 말 속에 그 해답이 있다.

그는 “팬들, 특히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력사건이 벌어져 죄송하다”면서도 “후회는 없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또 그럴 것이다.서승화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천하에 둘도 없는‘순둥이’ 이승엽이 또 그럴 거라니. 우리는 그의 말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두 생각이 갈등하고 있음을 느낀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팬과의 약속이 그 하나라면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상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팀의 단결이 두 번째. 이승엽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둔 듯싶다.

폭력과 여기서 촉발된 선수들의 집단대응. 이 두 가지는 그라운드에서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먼저 폭력 부분. 4년여 전인 99년 6월 박찬호가 애너하임과의 경기에서 팀 벨처에게 날린 ‘뛰어 돌려차기’는 그해 메이저리그 10대 뉴스에 뽑혔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한두 번 주먹이 오갈 수는 있지만 이보다 몇 배의 위력을 가진 발차기는 삼가는 게 상식이자 동업자 정신. 당시 국내 네티즌조차 ‘고추장 자존심’에 박수를 보내기보다 그의 경솔한 행동을 지적하는 이가 많았다.

아무리 난투극 중이라도 상대에게 직접 위해를 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손바닥이나 가슴으로 밀쳐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모 감독은 “그럴 수만 있다면 팬의 발길이 뜸해질 때 한번쯤 ‘몸싸움 시범’을 보여도 괜찮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도 있다.

또 하나, 팀의 단결 부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는 철칙이다. 난투극 때 어떤 선수가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면 그는 바로 ‘왕따’가 된다.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빈볼과 같은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희섭이 트레이너에 의해 저지당하긴 했지만 6월말 신시내티전 때 아픈 몸을 이끌고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난투극이 일어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구 사건엔 빈볼과 폭력에 앞서 큰 점수차에서의 번트 모션, 고의 볼넷 등 코칭스태프가 책임져야할 부분이 섞여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승엽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