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공직자 대상 ‘공개 특강’이 계속되면서 노 대통령이 공직자 교육에 ‘집착’하는 배경은 무엇인지, 특강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 대통령은 6월 11일 공무원 ‘인터넷조회’를 시작으로 이달 11일까지 두 달 동안 무려 12번이나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정부중앙청사나 서울지방경찰청 국가정보원 정부대전청사 등 ‘원거리 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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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특강을 들은 고위 공무원은 모두 2200여명. 세무관서장 경찰지휘관 국정원간부 검찰간부 등 4대 권력기관의 공직자, 군 장성과 중앙부처 실국장(1∼3급) 등 공직사회의 핵심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대통령은 왜 공직자 대상 특강을 하나=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이제 부처 공무원들은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해 달라”고 주문했다.
과거처럼 청와대가 나서서 일선 행정부가 하는 일에 일일이 ‘감놔라 배놔라’ 하며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부처에 자율권을 주되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묻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관료사회는 갑자기 주어진 자율권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청와대와 정부, 정부 각 부처간에 ‘불협화음’을 노출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평가다.
화물연대 파업이나 철도 파업 등 굵직한 현안에서 조그만 행사기획에 이르기까지 부처의 청와대 ‘눈치 보기’도 여전했다.
청와대도 표면적으로는 정부 부처에 자율권을 줬다고 하면서도 소관 비서실에 따라 부처를 중복 체크하는 등 간섭하는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다.
5월 이후 국정난맥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청와대 핵심참모들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이 겹치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공무원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설득’이다.
노 대통령은 5월 중순 청와대 각 수석비서관실의 선임비서관이 모인 회의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참여 정부’의 국정철학을 설명하고 공무원을 설득해야 청와대와 일선부처간에 벌어진 간극을 메울 수 있다”는 건의를 하자 이를 곧바로 채택했다.
▽대통령 특강의 목표는 무엇?=노 대통령의 12차례 특강은 대상에 따라 내용이 약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5년간의 국정운용 비전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달성을 위해 공직자가 갖춰야할 태도를 강조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청와대 한 386 핵심참모는 “특강은 ‘관료사회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며 “이는 관료와 호흡을 같이 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특강 때마다 “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공무원들을 함부로 자르지 않겠다. 대신 적재적소에 배치해 보다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언급을 빼놓지 않고 있다.
소수정권으로 관료사회의 지지기반이 약한 새 정부가 공무원을 ‘개혁주체 세력’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막말 논란 부르기도=특강에서 노 대통령은 특유의 서민적 직설적 어법을 구사하며 공직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는 평이지만, 이 과정에서 막말과 실언이 부각돼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7월 23일 민원 담당 공무원과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은 “민원 관청을 오르락내리락 하면 민원인들의 속이 터진다. ‘개××들, 공무원들 절반은 잘라야 돼’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고 언급했다. 또 6월 27일 여성 공무원과의 대화에서는 “머리가 모자라고 성질이 더러워도 밀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무관서장 특강에서는 공무원 사회의 개혁주체세력을 언급해 ‘공무원 편 가르기’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특강에 대한 자체 평가와 공직자회 반응=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공직자 대상 특강이 일단 ‘성공작’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홍보수석실의 한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5년 동안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공무원들이 구체적으로 알게 됐을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막연하게 느꼈던 이질감도 해소됐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정책실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현장에서 직접 들으면서 ‘내가 실천의 주역이다’는 생각을 가진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강을 들은 일선 부처 공무원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다 아는 내용인데 ‘재탕 삼탕’하는 얘기를 듣느라 지겨웠다”며 “질문자를 미리 정해놓고 대통령 듣기에 좋은 ‘용비어천가’ 같은 질문을 해 눈살을 찌푸리는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앙부처의 한 서기관은 “대통령의 특강을 들으면서 ‘코드 맞추기’ 수준을 넘어서 내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통령과 장차관의 합숙토론회에 대해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이런 집합교육을 하니 오히려 권위주의를 연상케 된다”고 꼬집었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경제가 어려운데 대통령이 ‘언론 공격’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고 본말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국 경찰 지휘관 특강에 참석했던 한 경찰서장은 “특강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들었다. 대통령의 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기회도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