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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싱크탱크]한국증권연구원

입력 | 2003-08-12 17:50:00


《김형태(金亨泰)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 초 한 세미나장에서 이규성(李揆成)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진념(陳稔) 재경부 장관이 어려운 지경이라고 하네. 현대그룹이 빨리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계동 사옥이나 서산농장을 사 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국내에 없다는 거야. 잘못하면 외국의 투자은행들이 헐값에 가져갈 위험이 있다네.”김 위원은 새로운 증권을 만드는 ‘증권 디자인’ 분야가 전공. 그는 바로 진 장관을 만나 “국부 유출을 최소화하고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은 증권과 금융 전문가였지 부동산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렇지만 구조조정기금(CRF)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경험으로 볼 때 부동산투자회사의 특수한 경우로 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CR-REITs)를 허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현재의 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다. 국가 경제가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해 증권 전문가가 만들어 낸 고민의 산물이다.》

한국증권연구원은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 방안과 구체적인 수단들을 연구한다. 왼쪽부터 선정훈 정윤모 한상범 조성훈 오승현 연구위원, 박상용 원장, 우영호 부원장, 김형태 송치승 김근수 정재만 연구위원. 원대연기자

● 자본시장 발전의 등대지기

한국증권연구원은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 방향과 구체적인 수단들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이다. 주식시장 채권시장 펀드산업 파생상품 구조조정 시장 등이 주요 연구 대상.

우영호(禹英浩) 부원장은 “자본시장 발전에 필요한 이슈를 던지고 이미 제기된 이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연구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투자자 업계 등 시장 참여자들의 공익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효율적인 시장제도를 만드는 것이 연구원의 사명이다.

1996년 4월 완성된 ‘증권제도 개선방안’은 지금까지도 ‘신(新)증권정책’이라고 기억되며 연구원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금융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자본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미국식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이후 외환위기 당시의 기업구조조정 방안 마련, 코스닥 증권시장 활성화, 회사형 투자신탁과 채권시가평가제 도입, 증시 통합과 기업연금제도 도입 등 자본시장의 굵은 의제들이 모두 연구원의 손을 거쳤다.

● 업계 이익보다 투자자 공익 우선

연구원은 1992년 1월 증권업협회 안의 ‘한국증권경제연구원’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뒤 1997년 9월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자본시장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면 업계는 “유관기관이 어떻게 업계를 비판하느냐”고 섭섭하게 생각하고 투자자들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며 믿지 않아 독립적인 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증권업협회 증권거래소 투자신탁협회 등 7개 업계 유관기관의 예산지원을 받고 있고 오로지 투자자들의 공익을 위해 내놓은 연구결과에 대해 종종 업계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2000년 7월까지 연구원에서 주식 시장을 담당하는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이정범(李柾範) 한국ECN증권시장 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퇴직하기 한 달 전에 증권거래시장의 개편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사업부식 지주회사’ 방식으로 증시가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랬더니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등 이해관계가 다른 유관기관들에서 엄청난 항의를 받았습니다.”

시기상조라는 의견부터 생각이 짧다는 지적,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혹평도 있었다. 이 사장은 이들의 의견을 모두 첨부한 이색적인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재 정부는 완전 통합 방식으로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우사태 이후 채권 시가평가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연구했던 고광수(高光秀) 연구위원도 채권업계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제도의 도입은 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다.

● 연구원의 미래를 이끄는 사람들

지금까지 연구원은 증권을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을 다루어 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취임한 박상용(朴尙用·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원장은 은행과 보험 부동산을 포함한 ‘거시금융현상’과 연계한 증권산업 발전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자산운용법과 방카슈랑스 도입 등으로 금융 영역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금융환경이 변화하는 만큼 금융 전반을 조망하면서 증권시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또 앞으로 1∼2년 동안 증권산업에서의 이해상충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투자자 보호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

우 부원장은 92년부터 현재까지 연구원을 지킨 대들보. 증권제도가 전공이다.

노희진(盧熙振) 연구위원은 증권산업 발전 방안, 증권시장 구조 연구 등의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김형태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시장의 제도적 인프라를 만드는 데 공헌해 2001년 금융감독위원장이 주는 상을 받았다. “지금껏 투자은행이 사용할 창과 방패를 만들어왔다”며 “이 무기를 사용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선수(한국형 투자은행)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고광수 연구위원은 연금과 투신 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 미국식 기업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국내 전문가.

정윤모(鄭閏模) 연구위원은 법학도 출신으로 금융과 법률을 접목시킨 연구를 하고 있다. 92년 연구원의 창립 멤버다.

오승현(吳承炫) 연구위원은 채권시장 전반과 장외파생상품(OTC) 등에 대해 연구했다.

한상범(韓尙範) 연구위원은 위험관리와 금융 정보기술(IT) 분야가 전공. 최근 제3시장 개선 방안과 코스닥 시장 관리제도 개선 방안 등을 연구했다.

송치승(宋致承) 연구위원은 청산결제제도와 전자증권제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김근수(金槿洙) 연구위원은 주식시장과 투자자 행태를 연구하는 ‘행태 금융(Behavioral Finance)’이라는 독특한 전공을 가지고 있다.

조성훈(趙成薰) 연구위원은 과거 KT에 근무하면서 민영화와 이후 기업지배구조를 설계한 기업지배구조 부문의 전문가. 현재는 투자은행도 연구하고 있다.

정재만(鄭在晩) 연구위원은 증권시장 매매제도를 연구하는 시장미시구조와 국제금융이 전문분야.

선정훈(宣廷勳) 연구위원은 증권 파생금융상품 및 외환시장에서 시장제도 및 참가자들의 전략적 상호작용이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

오로지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좋게 만드는 일을 위해 태어난 증권 유관기관이 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원장 정광선·鄭光善)가 바로 그것이다.

센터는 여느 연구소처럼 좋은 기업지배구조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조사하고 연구를 한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이후 국내 기업에 가장 알맞은 기업지배구조 모델을 개발했고 또 개선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일반 연구소와는 달리 센터는 현실을 바꾸는 데 필요한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기업 모델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델에 비춰 기업지배구조가 좋은, 다른 기업의 모범이 되는 회사들을 해마다 선발해 발표한다.

두 번째 발표인 2003년 7월에는 국민은행 삼성전기 KT KTF LG텔레콤 등 17개 회사가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은 발표하지 않지만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는 셈이어서 기업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올 가을 시행을 목표로 거래소와 함께 ‘기업지배구조주가지수(CGPI)’도 만들고 있다. 배당을 많이 하는 우량주 50개의 주가로 배당지수가 출범한 것처럼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 50개의 주가로 종합주가지수와는 다른 지수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

국내외 전문가들을 상대로 각종 세미나를 열고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등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높이는 것도 주요 활동이다.

센터는 사단법인으로 주주는 증권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증권업협회 투자신탁협회 등 증시의 6개 유관기관. 모두 기업지배구조가 좋아지면 이익을 보는 단체들이다.

정 원장은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인 이론가이고 송명훈(宋明勳) 부원장은 현장에서 증시를 지켜온 증권거래소 부이사장보 출신이어서 조화를 이룬다.

송 부원장은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데는 주주의 각성과 채권단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시장의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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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