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는 눈치가 9단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예정돼 있는 12일 오전. 뉴욕증시는 작정이라도 한 듯 옆걸음을 했다. 회의 결과를 지켜보자는 관망세였다.
오후 2시15분. FOMC는 현재 1.0%로 45년 이래 최저 수준인 연방기금 금리를 그대로 둔다고 발표했다. 더 내리지도, 올리지도 않을 것이란 시장의 예상과 같은 내용이었다. FRB의 판단은 ‘경기 하강과 상승의 가능성이 비슷하며 물가가 반갑지 않게도 하락(unwelcome drop)하는 디플레이션은 미약하나마 위협으로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종전과 같았다.
상황변동 요인이 없는 셈이다. 투자자들은 망설였고 주가는 옆걸음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FRB의 발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10여분 후 주가는 기세 좋게 올랐다. 그 사이 투자자들이 찾아낸 것은 ‘상당기간(for a considerable period)’이라는 구절이었다. FRB는 발표 마지막 부분에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위험이 당분간 주된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여 현행 정책이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경기가 되살아나는 신호가 여러 가지 나타나면서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크게 올랐고 이에 따라 FRB의 경기 판단이 달라져 금리를 올릴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FRB가 ‘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으로써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다른 부문에 충격을 주지도 않으면서 정책방향을 투명하게 밝힌 것만으로 시장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FRB가 그동안 쌓아 놓은 신뢰의 결과다. 정치바람을 타지 않으며 어떤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느라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준 덕분이다. 단어 몇 개로 정책 방향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중앙은행의 경쟁력이겠다.
시장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메릴린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두 달 전보다 FRB의 메시지가 더 분명해졌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슈왑 워싱턴 리서치 그룹의 라일 그램리는 CNBC TV에서 “FRB가 앞으로 1년간 금리를 유지할 전망”이라며 “하반기 경제가 개선될 것이라는 징후가 널려 있다”고 말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